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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로마 6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천천히 chunchunhi 2019. 7. 1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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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로마 6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를 거쳐 올라가는 언덕을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이라고 한다.  이 언덕을 다 올라가서 옆 건물과 사이에 난 짧은 길을 도니 확 트이는 광장이 나타나며 청동상이 한 가운데 서서 투명한 정오의 햇살을 받고 서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 황제의 청동 기마상이다. 기마상을 받치고 있는 광장의 바닥이 범상치가 않다.  약간의 무늬만 있는 평범한 돌바닥이지만 이 바닥에 명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재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광장에 서서 보는 광장의 디자인은 거저 여러 개의 곡선이 교차하며 어떤 문양을 만드는 것 같은데…. 진수를 느끼자면 하늘에서 보아야 한단다.

요즈음은 세월이 하도 좋아 구글지도에 캄피톨리오 광장을 치기만 하면 바로 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보는 모습도 보여준다.

 

구글 지도에서 캡쳐한 사진

 

Michelangelo's systematizing of the Campidoglio

미켈란젤로가 남겼다는 drawing

 

 

1538-1539에 만들어 진 하늘에서 보기 좋은 이 바닥 무늬는 마치 연꽃을 형상화 한것 같은 느낌을 주며 모든 선들이 실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단다.

비행기도 없었던 그 당시, 미켈란젤로는 왜 하늘에서 봤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서 바닥 문양을 만들었을까?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광장에서 조국의 제단이 있는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기 위하여 내려가는 계단을  코르도나타(cordonata)라고 부른단다. 이 계단 역시 미켈란젤로가 설계할 때에 아래쪽에서 언덕 위로 올수록 계단 폭을 넓게 설계하였단다.

우리는 포로 로마노에서부터 올라왔기에 실은 뒤에서부터 올라왔지만, 그 당시 포로 로마노는 완전 페허가 되어 흙 속에 거지반 묻혀 있을 때였기에 이 언덕 위에 있는 정부청사에 오기 위해서는 이 계단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길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 윗부분을 더 넓게 만들어서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였나?  2개의 석상 사이에서 시작하는 계단이 매우 넓게 보이며 저 아래 계단 끝이 좁아 보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짧게 보이기 때문에 꽤 높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부담 없이 오르게 하기 위하여 계단은 마치 계단이 아닌 것 같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착시효과를 주며 마치 낮은 경사면 같이 가깝게 보이게 만들었단다. 원근법을 꺼꾸로 이용한 미켈란젤로의 기 막힌 착상이었다.  

위에서는 멀리 보이지만 내려가는 길은 항상 올라가는 길 보다는 쉬운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니까!

 

언덕 위에 전개된 이 광장은 좌우 양쪽의 한 쌍의 건물, 즉 카피톨리노박물관과 팔라초 콘세르바토리 및 안쪽 정면의 시청사의 3개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좌우 건물이 마주보는 간격은 투시도법(透視圖法)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어지게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계단 위까지 오르면 멋진 청동상과 좌우의 건물과 정면의 건물이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보이도록 설계를 하였단다. 건물 배치에도 착시효과를 위해서 원근법을 꺼꾸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로마 시의회와 로마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시청사 건물은 과거에 세나토리오(Senatorio) 궁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이 건물의 정면은 평범해 보이지만 건물 뒷면은 아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의회 건물의 가장 아래 기층부는 고대 로마의 폐허, 즉 포로 로마노에 있었던 건물의 잔해인 것이다.  그 위에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올라섰다가 흙으로 덮여 있던 이 건물 위에 르네상스 시기인 1592년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 2000년 전에 땅속에 묻혀 있던 고대의 건물을 기초로 하여 계속 건물을 지어나갔던 것인데, 땅 속에 묻혔던 부분을 파헤치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캄피돌리오 광장의 시청사 옆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포로 로마노 전체가 바라보이는 기가 막힌 전망대가 있게 된 것이다.

 

1592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한 해인데 그 당시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여기에서는 아직까지 사용이 되고 있으니….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로마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황 식스토 4세는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유일한 청동 기마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 황제의 청동 기마상을 기증하였다.  원작은 박물관에 있다.






시청사 건물의 뒷 모습. 새로 지어진 시청사 아래 두차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그 앞으로 발굴된 포로 로마노 유적들이고


광장 입구에 서 있는 로마 공화정 시절 약세였던 로마군을 도와 주변 부족을 물리친 쌍둥이 형제 디오스쿠리의 석상이 계단이 시작되는 좌.우에 서 있다.


https://m.youtube.com/watch?v=TDd0rwRF5VI&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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