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서유럽 대가리

6 아시라아 유물들 대영 박물관 2

천천히 chunchunhi 2018. 8. 22.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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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시라아 유물들  대영 박물관 2

 

오늘의 이라크( Iraq) 중심부를 비스듬히 흐르고 있는 두 개의 큰 강,  유프라테스Euphrates 강과 티그리스Tigris River 강 사이의 지역을 우리는 메소포타미아’(강 사이의 땅)라고  부르며 이 지역에서 우리들의 지식으로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일어 났다고 배우고 있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 인도, 중국과 함께 고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 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창조론에서 말하는 에덴동산도 이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이 지역의 땅 속에 기름이 무진장 깔려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지금은 비록 사막 이어도 그 옛날에는 수목이 울창한 낙원이었을 가능성을 과학적으로도 배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울러 오늘날도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도록 싸움이 그치지 않는 지역인데 그 전시된 유물들을 보아도,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역사들을 보아도 그 옛날에도 이 곳에선 싸움이 그치지를 않았으니 누구나가 다 탐내는 비옥한 땅이요 번성한 도시들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가 보다.

 

근래에 와서(2015) 이슬람 테러세력인 SISI들이 이라크의 옛 영화의 기록들을 다 지워 버린다면서 BC 2,000 경의 유물들을 파괴하고 부수어서 세계인들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그네들이 때려 부순 유적들이 바로 니므롯(Nimrud) 이 건설한 궁전의 일부분과 그 신전들이었다.  1853년에 Austen Henry Layard 와 건축 역사학자인 James Fergusson 이 발굴하며 상상도를 그려 놓았던 그 아름다운 궁전들이 있었던 사막을 지배하던 영국이, SISI라는 것이 생기기 오래 전에 벌써 영국으로 운반해 온 그 유물들이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니므롯은 누구일까?

구약성경 창세기 10장에 자세히 기술한 족보에 의하면 그는 노아의 홍수 후에 살아 남은 노아의 3 아들 중 둘째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이니, 노아의 증손자로 8절에는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다.” 라고 서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성경이 허구가 아닌 것을 대영박물관이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떤 성서학자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니므롯이 개인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고대 민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허긴 삼국 유사삼국 사기도 쓰는 사람의 관심과 당시의 정치적 성향으로

다르고 다르게 되었듯이 후세 사람들 또한 읽는 사람에 따라서 믿고 싶은 관점이 다를 테니까….  허나 성경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니므롯의 후손이 블레셋을 낳아 블레셋 사람들이 되었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에들 가운데 다윗이 태어나 훗날  다윗과 골리앗의 유명한 싸움이 있었으니 결국 집안 싸움의 시조가 되고 만 셈이다. 그 집안 싸움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참고로 아시리아의 히브리음은 앗수르이며, 그리이스 음은 앗시리아인데 성경에는 앗시리아의 국민들과 나라 이름과 영토까지 일컬어 앗수르라고 불렀다( 10:22; 대상 1:17; 왕하 15:19; 16:7-8; 대하 28:16-21; 9:32; 83:8; 7:17; 2:18; 16:28; 5:13). (장인수 박사(D.Min Ph.D) 역사 탐방에서)

 


아시리아 역시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같은 맥락의 반인반수의 라마수가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을 상징하는 관을 쓴 인간의 얼굴에 몸통은 황소, 혹은 사자, 그리고 날개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지혜, 황소나 사자의 힘과 새의 비상을 아우르고 있는 왕궁과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믿으며 왕궁 문 앞이나 도시의 성문 앞에 세워 놓았다. 발 굽을 보면 어떤 것은 소의 갈라진 발굽이고 어떤 것은 사자의 발처럼 만들어 졌다. 한국의 해태와 비슷한 맥락인가 보다.






화려한 궁전의 입구를 장식하는 성문의 접철 한 부분이다.


유물을 보고 유추해서 만든 성문. 엄청 크다.


북쪽 궁벽에서 떼어 온 돌에 새긴 전쟁장면 부조다. 더 길게 이어지는 부조물이다.



이집트에서는 그림으로 표현하여 오던 왕들의 치적을 상형문자를 만들어 돌 비석에 새겨 두었듯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그림으로 기록되던 역사를 쐐기문자( 혹은 설형문자라고도 한다)를 만들어서 진흙판에 기록한 후 구워서 후세에 전하는 것을 보면 위정자들이란 모두 자신들의 치적을 후대에 남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나보다.

이런 욕망이 어쩌면 인간의 지혜를 전수할 수 있게 되어 오늘의 문명을 가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인류 최초의 법전인 함무라비법전도 이 지역에서 만들어 진 것이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법이라는 규범이 필요하도록 에덴 동산에서부터 욕심에 강하고 유혹에 약한 DNA가 심겨 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에 이렇게 정교하게 돌에다 역사를 기록하였으니 그 기록된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며 설명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들의 지식이 변하게 되는 것은 100년도 못사는 우리로서는 어쩔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너무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안들 어쩔 수가 있겠는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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