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대 街가 里리 1
천천히 길 따라 보이는 세상
강화도1 초지진
강화도에는 마니산이 있다.
정상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전해오는 참성단이 있어 요즈음에도 전국 체전의 봉화를 채화하기도 하고, 10월 3일 개천절에는 강화 개천 대 축제를 거행하는 산이다.
469m밖에 안 되는 과히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산의 정상에서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각각 같 단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보면 그 중앙이요, 또 그 중앙에서 세계를 바라 보면 그 또한 세계의 중앙이 아니겠는가?
세계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고 또 그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소멸 되기도 한 문화의 유산들도 참 많다.
세계의 꼭지, 강화도에서부터 천천히 길 따라가며 보이는 세상들을 보기로 하자.
육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화도는 고려의 개경은 물론 조선의 한양과도 가까웠고,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던 관계로 여러 차례 천도(遷都)와 몽진(蒙塵)의 땅이 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바다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침을 제일 먼저 받는 격전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부터 강화도 곳곳에 진, 보와 돈대를 설치하였는데, 근래에 복원하여 관광지 구실을 하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 돈대 같은 군사 시설을 볼 수가 있다.
진과 보는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사용하던 명칭으로 군사들이 주둔하던 성곽이나 군사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진은 보보다 규모가 조금 더 컸으며, 돈대는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 시설로 그곳에 대포를 배치하였던 곳을 이른다.
내가 한국을 떠났던 50년 전만 하여도 인천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강화도가 이제는 강화대교가 생겨 더 이상 섬이 아닌 번화한 도시로 변해 있었다.
제일 먼저 찾아 본 초지진(草芝鎭)은 강화해협을 사수하는 12개의 진.보 중에 외세의 첫번째 침공 루트가 되었던 곳이다.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구축한 요새이다.
그 뒤 1866년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 함대(병인양요)와 1871년 4월 무역을 강요하며 침략한 미국의 아세아 함대(신미양요), 그리고 1875년 8월에 침공한 일본 군함 운양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당시 프랑스·미국·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하여 조선군은 빈약한 무기로 대항하여 싸웠던 것이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1875년 9월 20일부터 일본의 운요호와의 싸움은 결국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지고, 일본 무역을 위해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조일수호조약)
1973년 초지진의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여 지금은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225호다.
앞으로 전쟁없는 세월이 한 100년은 더 흘러야 성곽에 고풍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은 새로 축조된 고성이다.
성벽에서 갯벌위로 흐르는 서해 물살을 바라 보는 마음! 아마도 사진만큼 어두어진 건 아닐까?
다시 태어난 옛 대포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한국, 일본 大街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가리6 두물머리 팔당 (0) | 2017.08.05 |
---|---|
대가리5 강화도5 제적봉 평화 전망대 (0) | 2017.08.04 |
대가리 4 강화도 4 전등사 (0) | 2017.08.04 |
대가리3 강화도 3 광성보(廣城堡) (0) | 2017.08.04 |
대가리2 강화도 2 덕진진(德津鎭) (0) | 2017.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