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북 유럽 여행기

29 바이킹이 남긴 자취 -1

천천히 chunchunhi 2014. 1. 13. 12:25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스칸디나비아와 덴마크에 거주하면서 해상을 통해 유럽과 러시아 곳곳으로 진출한 노르만족. 바이킹은 해상을 중심으로 상업을 주로 했으며 각지를 약탈하기도 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바이킹"의 정의다.

바이킹이 살던 곳은 춥고 척박한 곳이어서 약탈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당시는 바이킹이 침략하던 나라들도 다른 지역을 수시로 침략하던 약육강식의 시기였다.      

그러니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라는 잣대가 사용될 수 없는 시절,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리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약탈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는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 도둑은 영웅이 되어 지배자가 되고,좀도둑은 거저 도둑으로 어두운 감옥 속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그당시 바이킹이 살던 포구의 뒤로는 험준한 산맥이 하늘까지 닿아 있으니 갈 데라고는 넓은 망망대해 밖에 더 있었겠는가?

그 덕분에 바이킹들은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가지게 되어 8세기-11세기 사이에 유럽의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등의 해안지방은 물론이고 비잔틴 제국의 수도(오늘의 터키 이스탄불)마저 약탈한 기록이 남아있다.

바이킹들의 주 무기로 사용된 칼은 그 지방의 좋은 철광석을 사용하여, 현대의 "고탄소강"에 필적하는, 탄소 함유량이 높으면서 철의 순도도 높아 당시로서는 다른 족속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재료와 기술이 사용된 최첨단 무기였기에 유럽에서는 이에 필적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그래서 쉽게 유럽 대륙을 석권할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킹"하면 덥수룩한 수염과 긴 머리에, 뿔 투구와 손도끼를 사용하는 "야만전사"를 생각하게 하지만 실상은 잘 제련된 갑옷과 검, 그리고 작은 손도끼와 둥근 방패, 얼굴까지 덮는 큰 투구로 무장한 흡사 기사와 비슷한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요즈음 이네를 표현하는 모양은 좀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상점 앞의 바이킹 모형.

 

 

 

바이킹의 상상도. Google에서 빌려온 사진이다.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 박물관에는 그네들이 대서양을 누비던 배가 발굴 상태 대로, 그리고 일부는 원형대로 복원 된 모양이 모두 전시되어 있는데

날렵하고 무척이나 빨라 보이는 배들을 보노라니 바이킹들이 이 배들을 타고 "영국과 노르망디에서 시칠리아를 거쳐 비잔틴" 까지 전 유럽을 누볐던 그 시절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네들이 남긴 자취를 한번 드려다 보자.

 노르만 바이킹의 지도자 루리크 는 지금의 러시아지방에 "노보고르드 공국" 을 세웠고, 올렉은 러시아 최초의 국가 인 "키에프 공국" 을 세웠다. ( 그러니까 러시아 인들이 자기들 최초의 왕으로 바이킹 을 받아 들였다. )

증손자 블라디미르는 988년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여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러시아정교" 를 창시했다.

 

서쪽으로 간 한 갈래는 아이슬란드를 거쳐 그린란드 를 발견하고, 캐나다 북동부에 상륙하여 콜럼부스보다 500여 년 전에 신대륙을 발견 했으며,( 바이킹 박물관 앞에 흉상이 전시된 고고학자 안네 스티네 부부가 고고학적으로 연구하여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500여 년 전에 이미 바이킹들이 먼저 발견했다고 입증하였다.
이는 Canada @ExploringCanada(캐나다관광청 웹)에서도 볼 수 있다.캐나다의 재미난 역사 이야기 중에서 : 바이킹 레이프 에릭슨과 그의 선원들은 랑스 오 메도우에 정착하여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들이 최초로 북 아메리카를 밟은 유럽인들이며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보다 500년 앞선 일입니다.)

 

또 한 갈래 노르만 바이킹 전사들은 서남쪽으로 세느강 하류에 상륙해 프랑스 왕국의 파리를 점령하고 "노르망디" 공국을 세워 프랑스 여자들을 차지하고는 노르망디에서 자손대대로 백수십년을 살았으며, 그 후손인 노르망디의 윌리엄은 같은 바이킹 (노르만) 인 덴마크 데인족의 크누트 가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 잉글랜드에 5천의 기사를 이끌고 상륙하여 에섹스, 웨섹스, 킴브리아등 앵글로 색슨족의 일곱 왕국을 정복하고, 영국 최초 의 통일왕국, 노르만 왕조 를 세워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었고….

 이 노르망디 세력의 일부는 남으로 내려가 기사 루제로(로제르1) 는 불과

수백 명의 노르만 기사를 이끌고 20여 년간 전투 끝에 비잔틴과 이슬람 사라센 을 쫓아내고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섬을 아우르는 시칠리아 왕국 을 세웠던 것이니 전 유럽이 이들의 활동 영역이었던 것이요, 그 후손들이 오늘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영역이 얼마나 넓었는가! 그런데도 이네들을 야만인들이라고, 해적들이라고만 할 수가 있을까?

 

 

바이킹의 활동영역을 표시한 지도.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앞에 흉상이 전시된 고고학자 안네 스티네 부부

 

 

 

실제로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아주 프라우드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험심도 강하고, 또 잔인하기도 하였던 바이킹의 후예들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복지가 잘 된 나라를 이루며 해도 잘 안나는 그 추운 지방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은 자살률이 꽤 높은 편이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 밀려 많이 줄어들었지만….

 

 

덴마크의 코펜하겐 시청사 옆에 높이 올라 선 바이킹병사의 동상.
이 둘의 나팔소리가 들릴 때 역사가 바뀐다고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