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 광장의 대 학살
서기 1,000년경까지도 스웨덴은 다른 북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다운 형태를 갖추기보다는 여러 영주들이 그 지역을 다스리던 군웅할거 상황에 지나지 안았었다. 그러다가
비르예르 얄(Birger Jarl 재위 1250-1266) 이 중앙집권 형태의 왕궁을 설립하며 수도 스톡홀롬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시청 건물 끝 부분에 그의 금관이 놓여 있다. 그러나 상징일 뿐 빈 관이다.
1340~50년대에 유행한 흑사병의 영향으로 나라가 크게 흔들리자 스웨덴의 귀족들은 자신의 국왕을 폐위시키고 그당시 막강하여 진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여왕의 주도 하에 북 유럽국가 연합인 “칼마르 동맹(1397~1523 지속)”에 자발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칼마르 동맹은 당시에 급성장하는 독일이 발트해를 장악하려는 것에 맞서고자하는 초기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듯 하였으나 마르그레테 여왕이 죽자 연합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칼마르동맹으로 왕위권이 덴마크에만 주어졌기에 이를 덴마크의 압제로 여겨 독립을 추구하며 칼마르 동맹을 깨려하자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스웨덴을 방문하여 이곳 “스토르토리에트 (Stortorget)"광장에 있는 호텔에 묵게 되었다.
이를 기회로 스웨덴 사람들은 덴마크 왕을 암살하기 위해 왕의 침실을 향해 대포를 쏘았지만 대포알은 불발인 채 호텔 벽 모서리에 박히고 만다. (아마도 노벨이 태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ㅎㅎ)
이에 분노한 덴마크 왕은 화해를 하자며 스웨덴 귀족들을 파티에 초대하는 모양을 갖춰 이곳 광장에 모이게 한 후 좁은 골목을 일시에 차단하고 스웨덴의 왕과 귀족등 82명을 이틀동안 스토르토리에트광장에서 교수형, 또는 우물에 던져 처형한 것이 "스웨덴 대학살 사건"이다.
이때 당시 왕자 신분으로 덴마크에 인질로 가있던 “구스타프 바사" 왕자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고국에서 살육당하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스웨덴 국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조국에 도착하여 민병을 뫃아 1523년까지 스웨덴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 결과 "구스타프 1세 바사"로 왕위에 올라 근대 스웨덴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동시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를 끊고 종교 개혁을 받아들여 루터교를 국교로 정한다.
이런 기억을 가진 골목길들이 스톡홀름에서 오늘날 까지도 "중세 유럽의 골목길"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준다. 13~19세기 사이에 이루어 진 옛 시가지를 감라스탄(Gamla Stan)이라고 부른다. "모르텐 트로치그 그랜"이라 이름 붙은 폭 90cm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등, 여러 골목들이 모이는 그 중심에 있는 광장이 “스토르토리에트 (Stortorget)"광장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많은 귀족들을 던져 죽였던 우물을 중심으로 13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지어진 집들이 둘러 서 있는 중에 1776년에 건설한 증권거래소 장소가 2001년 노벨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노벨박물관으로 변하였다.
2층은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뽑는 한림원격인 스웨덴 아카데미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광장에서 조금 해안가로 걸어 나오면 스웨덴 왕궁이 나오고, 왕궁 남쪽에는 커다란 시계가 있는 청동탑의 성 니콜라스 대 성당이 있다. 1279년에 건립하여 수차례의 개.증축을 통해 148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이후 국왕과 여왕의 대관식, 왕가의 결혼식등이 치루어 졌으며 현 국왕인 구스타프16세도 1976년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루터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 서있는 오벨리스크는 러시아와의 전쟁중에 자리를 비웠던 구스타프 3세가 자신을 대신하여 스스로 수도를 지켰던 스톡홀름시민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이다.
(구스타프 3세는 2세와는 달리 무지 겁장이였던 모양이다. 2세의 이야기는 다음주에....)
광장 중앙의 우물이다.
우물 안에 사람을 던져 넣어 죽이는 일은 동양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닌가보다.
그 옛날에 벌써 이렇게 높은 집들을 짓고 살았다.
저기를 오르내리는것 자체가 엄청 큰 운동이었을것 같다.
제일 좁은 골목길. 너비가 90cm 밖에 안된다.
마차가 돌면서 집을 파손내지 못하게 박아 놓은 쇠말뚝
중앙에 서있는 오벨리스크
옛 왕궁 앞이다. 마침 영화촬영을 하노라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1745년에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왕궁 건물에는 608개의 방이 있으며 옛날에는 왕의 거처였으나 요즈음에는외국 국빈의 만찬장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 현재의 왕궁은 스톡홀름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이다.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북 유럽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 바이킹의 수도 - 오슬로 [Oslo] 시청 (0) | 2013.12.17 |
---|---|
25 화려한 전함 바사호 (0) | 2013.12.09 |
23 스톡홀름 시청과 노벨 (0) | 2013.11.23 |
22 헬싱키 대성당 The Lutheran Cathedral (0) | 2013.11.17 |
21 암석(Rock)교회 (0) | 2013.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