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북 유럽 여행기

11 크렘린(Kremlin)

천천히 chunchunhi 2013. 8. 31. 11:00

11 크렘린(Kremlin)

크렘린이 표준말이지만 우리에게는 크레물린이라는 비표준어가 더 친숙하게 들려온다. “크레물린이라고 하면 옛 소련정부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우린 속을 잘 알 수 없이 음흉한 사람크레물린이라고 지칭하고는 하였었지. 아마도 그만큼 그 당시의 소련의 속내는 알기가 어려웠었던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막상 크렘린이란 말은 성채라는 말이다.

모스코바 강변에 세원진 성과 그 안의 많은 건축물들은 1485-1495년에 이태리  예술가들과 건축 기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성채의 윤곽은 삼각형의 모양을 띠며, 성벽 총 길이는 2,235m이다. 잘 구워 낸 큼직큼직한 벽돌 (한 개 중량 8 kg)을 쌓아서 만든 성벽은 지면의 기복에 따라서 그 높이가 5미터에서 19미터에 이르며 벽 두께는 3.5-6.5m이다. 이 성벽을 따라서 18개의 군사용 탑이 있다.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탑 중 가장 높은 것은 구세주탑과 삼위일체탑이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되고 소비에트 연방공산당의회가 설치 되면서 소위 공산당본부가 이곳에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크렘린하면 소련공산당하는 동의어가 된것 같다

혁명 후 레닌의 묘가 이 성벽에 이어져 붉은 광장 안에 만들어 져 있다. 허나 요즈음에는 이 묘를 옮기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식으로 지은 KGB빌딩도 이 안에 있어 아직도 소련 공산당을 연상키우게 하지만, 막상 크렘린 성채 안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적인 양파모양의 지붕을  금으로 도금한 많은 교회들이 번쩍이며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의해 함락된 후로는 한 때 "3의 로마"로 불려지기도 하였었다.

1156년 모스코바강 언덕에 목책으로 세워졌던 작은 요새가 800년의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황제들의 거처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많은 교회들을 크렘린 안에 지었지만 혁명 후 소련 공산당의 본부로 사용되는 동안 많은 교회들이 허물어지기도 하였단다.  아직도 크렘린 안에는 외국 귀빈의 회견장으로 사용되는 크렘린 궁과 레닌이 거주했던 원로원자리, “성모승천사원이라고 불리우는 우수펜스키사원” “12사도 사원”, 모스코바에서 가장 높은탑인 이반 대제의 종루높이 6m에 무게가 200톤이 넘는 최대의 종으로 만들어 졌으나 불행하게도 한번도 울려보지 못한 황제의 종과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라는 황제의 대포역시 한 방도 발사를 해 보지 못한 채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간 결과가 오늘의 소련을 이렇게 많이 개방되게 한 모양이다.

만들어 진 후 한번도 울려보지도 못한 채 화마에 휩쓸리다 소방관이 뿌린 물에 깨어진 채 아직까지 땅바닥에 놓여있는 커다란 종, 몸체가 다 들어 가고도 남을만큼 커 위용만 있지 실제로는 쓸모가 없는 대포,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황금의 돔을 가진 많은 아름다운 성당들을  보면서 "과연 혁명이 일어날만 하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둡게 교차하는 생각, "교회에는 관광객들보다는 예배자들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  

아름다움에 취하면서도 막상 권력과 금력의 손을 잡은 교회의 말로를 보는 마음이 씁슬하여진다.

권력과 금력 또한 공산주의처럼 한시적일 텐데….

결국에는 오늘을 구가하고 있는 자본주의 또한 언제인가에는 한시적이 되겠지?

모든 일에는 시작과 종말이 있다고 하시었으니까.

크렘린과 붉은 광장은 1990년에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황제의 대포 한번도 불을 뿜어보지 못하였다.

뒤에 보이는 황금돔이 우수펜스키(성모승천)성당 이다.

교회와 대포, 어째 좀 안어울리는 조합 같다.

 

너무나 커서 슬픈 종  이반대제의 종

 

 

 

이반대제의 종루

 

 

 

테렘(Terem) 사원 지붕의 금 십자가들.

 

 

우수펜스키 성당

 

붉은 광장에 면한 크렘린성곽과 레닌의 묘  NEX6  1/160s  f:16  iso 200  54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