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크리스챤 월드 성경 안밖의 세상

51 마사다(Masada) 2 비극의 잉태

천천히 chunchunhi 2013. 1. 29. 23:17

51 마사다(Masada) 2 비극의 잉태

 

기원전, 그러니까  BC586년 시드기야 11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 된 후 바벨론으로 많은 포로들이 끌려가고 유대지방은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다. 그 후 바벨론이 알렉산더대왕에게 멸망하자 유대지방 또한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세월이 흘러 역사의 흐름은 그리스의 문화가 로마를 점령하여 그리스 신화가 로마신화로 변절이 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로마에게 멸망당하자 유대지방 또한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결국 장장 600여 년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오랜 고난의 세월동안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며 자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선민사상을 전승하며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존력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꽤나 잔혹하고, 잔인하여지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유대인! 하면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지 않은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도, 또 프라하의 천문 시계탑의 조각에서도 인용이 되어 질 정도이니까·······

 

기원이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뀌던 즈음(예수님이 태어나시던 시절),  로마의 통치하에 있던 유대민족은 호시탐탐 반기를 들며 기회를 노리다 드디어 서기 66년에는 로마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혁명정부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요세프스도 독립군 부대를 이끈 지휘자의 한 사람이었으나 로마가 파병한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갈릴리에서 대패하자 항복을 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로마 군들은 서기 70 8 29, 예루살렘을 완전히 재정복하게 되었다.

일단 예루살렘을 접수하자 성전 안에 있는 금은보화를 탈취하기 위하여 성전을 허물고, 성벽 중에 서쪽에 있는 일부분만을 남겨 놓고는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나마도 그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로마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은 성벽을 무너뜨렸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니 가히 그 성벽의 위용과, 또 그 전쟁의 치열함을 상상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때 허물어 진 성전과 성벽은 솔로몬시대에 지어 진 1차 성전이 아니다. 
누가복음 21:5어떤 사람들이 성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예수께서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 지리라·····“고 하신, 헤롯 대왕이 1000여명의 제사장들을 독려하여 하얀 석회암( 그러나 대리석처럼 하얀 색이 아니고 조금 갈색을 띈 돌이다.)으로 화려하게 지은 제2 성전이다.  그 때 서쪽에 일부 남겨 놓은 성벽이  요즈음 통곡의 벽 이라고 불리는 곳이 되었다.

 

결국 66년부터 시작된, 로마에서 보면 반란군 진압작전이 성공을 한 것이고 유대인들로 보면 로마에 항거하던 독립군들이 완전히 허물어 진 것이다.

이 전쟁이 있기 전 까지만 하여도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지만 종교에는 어느 정도 자율권을 주어 회당이 운영되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수가 있었으나 이번의 재점령은 그 결과가 너무나도 참담하게 다르게 되어, 성전이 불타 파괴되고, 모든 성물들이 약탈당하였음은 물론 오랜 봉쇄작전과 심리전 끝에 무너진 땅에 들어 온 점령군들은 그 분풀이로 심한 폭정과 약탈을 잔인하게 자행하자 유대 사회에는 더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어 율법?, 하나님? 사랑? 도덕? 사회정의? 이런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 각 지파들끼리, 혹은 조금 더 잔인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어 더 큰 악행들을 같은 민족들 끼리 자행하게 되는 암담한 시간들일 때 엘르아살이라는 사람이 지휘하는 시카리라는 집단이 그 중에서도 최악의 집단이 되어 그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시카리(Sicarii)란 로마통치에 반대하기위해 생겨난 극단적인 열심당원들이었다.
단도를 지닌 사람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A.D.50-70경 무리를 지은 암살자들이 유대를 약탈하고 탄압했다.  (이네들이 사도행전 21:38에서는 자객으로 언급되어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세상의 수만 가지 죄악 중에 이들이 자행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을 정도이니까. 이런 시카리들이 마사다를 장악하여 더욱 세를 키우며 동족들에게만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에도 반기를 들게 되자 로마에서는 73년에 당시의 유대 총독인 실바(Lucius Flavius Silva) 장군으로 하여금 이 반란을 평정하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마사다의 비극이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서쪽에 조금 남은 성벽, 통곡의 벽이다.(사진: 한호림제공)     이 성벽의 윗부분은 이슬람 지역이다. 이슬람을 의미하는 팔각형 건물에 찬란하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돔으로 되어 있다. 이 돔 아래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자리이고 또한 솔로몬이 지은 성전 자리이기도 하다.
2.  통곡의 벽에 와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사진: 한호림제공)     사진에서 보듯이 총을 휴대한 군인까지 보인다. 그런데 왜 여성은 없을까? 없긴? 옛날부터 성전에도 여자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었듯이 이 곳도  여성은 이 벽의 오른쪽에서 기도드리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