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우먼 파워 동유럽 여행

프라하 8 카를 4세 다리

천천히 chunchunhi 2011. 11. 1. 06:29

 

프라하 8 카를 4세 다리

 

프라하에는 블타바강이 있다.

우리가 학교다닐 때 배운 이름으로는 몰도우 강이다.

스메타나가 작곡한 교향시 나의 조국중에 있는 몰도우가 바로 이 강 이름인 것이다.(이 것을 알기까지 한참을 혼동하였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학교다닐 때 배웠던 지명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북미에서 부르는 지명하고, 또 이 곳 사람들이 부르는 지명하고에 차이가 있다 보니 전혀 다른 곳으로 알던 곳이 같은 곳인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이 몰도우, 즉 블타바강에 많은 다리가 있지만 그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카를교이다.

1342년 카렐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목조 다리가 홍수로 떠내려가자
1357년 카를 4세의 명에 의해 성 비투스 대성당을 지은 페터 파를러(Peter Parler)에 의해 새로운 다리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완성은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이다.

강 속에서 12개의 교각이 떠받치고 있고 11개의 아치가 다리 아래에 늘어선 이 석교는 너비 10m, 길이 516m로 유럽 중세 건축의 정점에 있는 걸작이다.
원래 Stone Bridge (석교) 또는 Prague Bridge (프라하교)로 불리던 것이 1870년부터 Charles Bridge (Karluv most, 카를교)로 불리고 있다. (영어로 촬스를 여기 말로는 카를이라고 발음 한단다.)

 

잦은 홍수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온 시민들이 모아들인 달걀 껍질로 다리의 내부를 채웠더니 더이상 홍수에 붕괴되지 않았다는 속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허나 우리에게 설명을 하여 주는 가이드의 말은 돌과 돌 사이의 접착제로 계란을 사용하였단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턴 계란이 사용되었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다.

원래에는 마차, 트램, 버스 등이 통과할 수 있게 하던 것을 안전상 금지시키고 1978년부터 사람 통행만 가능하게 하였단다.
워낙 오래되어 계속해서 수리, 보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건너는 중에도 한 부분은 가린 채 보수작업이 한창이었다.

 

다리 위에 있는 30기의 성인상은 다리가 건설될 당시에는 없었고,
1683년부터 1714년 사이에 대부분 만들어졌고, 20세기 초까지 걸쳐서 제작된 것이다.

1965년부터 시작하여 모든 동상을 복제품으로 바꾸고 진품은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으로 옮기었단다.

다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위에 5개의 금빛 별이 반짝이는 동상이  "성 얀 네포무츠의 동상이다.(자세한 내용은 성 비투스 성당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람.)

특히 이 동상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다른 이유는 이 동상 밑에 부조된 두개의 그림이 있는데 왼쪽에 있는 개를 오른 손으로 만지고, 오른쪽에 있는 왕비를 왼손으로 만지면 다시 프라하를 방문할 수가 있다는 전설때문인가 보다.

그러니 나도 한번 만져 봐야지. 다시 한번 오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이니까!

 

 

오늘부터 여행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할 가이드가 자기를 브르스 리라고 소개를 한다.

처음 데려간 곳이 프라하 성의 대통령궁전이요, 이어서 성 비투스 성당이다.

그리고는 카를다리로 우리를 데려 온 것이다.

프라하성 뒷쪽부터 연결된 황금소로가 있어 아기자기 하다는 데…. 우리 가이드는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지 않으니….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지, 별수가 있나.

 

카를 다리를 거쳐 천문시계탑으로 갔다.

어제 본 곳과 중복이 되는 곳의 서술은 할 필요가 없겠기에 그만두지만 한가지, 어제 미리 본 것이 정말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키운다.

아마 어제가 없었다면 많이 후회를 하며 아쉬워 하였으리라.

 

천문시계탑을 보고는 그 중앙광장의 뒷 켠에 있는 현지 식당으로 가서 여기 전통음식으로 점심이란다.

나온 것을 보니 어제 점심에 먹은 것과 똑같은 것이다.

결국은 이것이 여기의 특식은 특식인 모양이다.

점심을 서두르더니 빨리 버스에 타란다.

다음의 행선지 비엔나로 가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을 때가 2 30분이었다.

비록 많은 것을 못 보고, 또 본것마저 수박 겉 핥기 식이었지만 그래도 참으로 인상적인 프라하였다.

머리 속에 그리던 우중충한 공산국가의 수도 프라하가 아니라 요즈음의 캐나다의 고전음악방송(FM 96.3)의 대부분을 연주하는 프라하 오케스트라가 있는, 그리고 오랜 역사와 전통의 유서 깊은 도시 였다.

결국 나의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벗겨 준 프라하 여행이었던 것이다. 언제 다시 오려나?

다리 위에서 두개의 그림을 만졌으니 다시 오게 되겠지.

! 프라하여 안녕!

 

 

돌 다리의 전경입니다.

 

 

 

 

다리의 이쪽 끝 Tower

 

 

가까이 보는 타워의 위용

 

 

 

 

 

이런 동상들이 세워져 있읍니다.

 

 

 

 

 

 

 

 

 

 

 

 

 

 

 

 

 

 

 

 

얀 네포무츠의 동상

 

 

 

이걸 왼손으로 만지고

 

 

 

 

 

 

 

이걸 오른손으로 만져야 다시 올수 있다나....

 

 

 

 

돌에 묶여 버려진 얀 네포무츠의 시신이 떠 오른 자리

 

 

동상과 동상 (한문이어야 그 뜻이 읽힐 테인데..... 추측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