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탑.
해자 건너에서 본 앙코르왓
해자 입구에 나가 앞에서 폼잡고 있는 괴수 얼굴 모양은 어째 한국에서 보는 해태와 비슷한 느낌이다.
근데.... 이 꽁지는 왜 빠졌을까? 누가 빼어 갔을까? 그래서 꽁지 빠진 뒷태가 되었다.
넓은 해자
해자 중간 중간에 양옆으로 나온 난간은 아이들 놀이터이기도 한 모양이다. 물이 꽤 깊은데....
나가의 사열을 받는 귀부인....
창문. 바람막이로는 있으나 마나한 창문이지만 예술적인 조형미는 쨩이다.
압살라. 그 많은 압살라가 다 다른 모양이라니...
나에게는 생소한 힌두신인 모양이다. 어째서 팔이 여덟개나 되는 것일까?
교태
여기도 꽁지가 빠졌네.... 이네들도 꼬리곰탕을 되게 즐겼나보다.
또 다른 나가. 사원 둘레마다에 나가가 있었다. 결국 큰 배암이 사원을 둘러 싼 형태인데....
복도와 회랑으로 연결되어지는 문, 문, 문
돌에 양각한 조각들을 자세히 보면 잠자리 날개같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졌다.
그때나 이제나 무희들은 See through?
하도 손때를 타서 까매진 유방.... 여기에 손때를 남길 때 사람들은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난 만져보지 못해서....ㅎㅎㅎ
길게, 길게 이어지는 벽의 부조
회랑의모습이다.
회랑 밖의 모습
또 다른 회랑. 그림을 보며 가다 보면 동서남북의 감각이 없어진다.
회랑 천정의 조각
음각된 부조
정원으로 나가는 문
또 이어지는 회랑
왕의 거처로 올라가는 계단이라고도 하고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계단이라고도 하고... 하여턴 매우 가파르다.
옆의 젊은 새악씨들의 장난을 보며 ....
함께 하였던 일행중의 한 명인데 검은 색조의 돌들 틈에 빠알간 셔츠가 튀어나와 올려 보았다. 이것도 몰카에 들어가나? 야외 퍼포먼스인데....나의 모델이었으면 구도가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이 아해는 무엇을 낚고 있을까? 벌써 세월을 낚는 것은 아닐테! 저녁거리가 나오려나...?
넓은 해자에는 물도 많더라.
3 앙코르 왓 - 캄보디아, 씨엠립
이 사원은 앙코르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캄보디아의 기념비적 유적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이라고 한다.
물론 종교마다, 그리고 평하는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있겠지만…..
실제로 면적 면에서는 앙크로톰보다 작지만 해자의 넓이는 앙코르톰보다 더 넓고, 이 넓은 해자가 밀림의 침입을 막아준 관계로 페허화가 적게 되어서인지 지금은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가장 복원이 잘 된 상태로 캄보디아 관광자원의 1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까.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니 앙코르와트는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되는 것 같다.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황제 수르야 바르만 2세에 의해 약 30년에 걸쳐 축조된 이 사원은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Vishnu) 신에게 봉헌되었단다.
이 사원은 입구가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사원임을 짐작케 한단다.
길이 3.6km의 직사각형 해자에 둘려싸여 있는 이 사원의 구조는 크메르 사원 건축 양식에 따라 축조되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 중심인 메루(Meru)산, 즉 수미산이며
주위에 있는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외벽은 세상 끝에 둘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해자는 바다를 의미한다.
이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Naga : 머리가 일곱 달린 큰 뱀-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할 때 나쁜 짐승으로부터 그를 지켰으며, 머리를 부채처럼 활짝 펴서 비로부터 부처를 보호했는데, 이러한 보호의 개념 때문에 사원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여겨져, 사원입구부터 세우는 것이 크메르 건축의 일반적인 특징이다)가 양 옆으로 실게 늘어선 난간을 따라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나가 앞에는 꼬리가 빠진 우리의 해태비슷한 동물이 양 옆으로 앉아 있었다.
결국 해자의 넓이가 250m라는 이야기이니 얼마나 넓은 해자인가.
이처럼 넓은 해자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폐허가 된 앙코르왓 안으로 정글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줘서 파괴가 최소화 되었다니 해자란 인간의 침입만을 막아주는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해자위에 놓여진 돌다리 또한 엄청난 규모였다.
사방에 산이 안보이는 이곳 씨엠맆에 어디에서 이런 돌들을 옮겨 온 것일까?
가이드의 말로는 이것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란다.
이곳을 최초로 방문한 서양인은 포르투갈 수도사인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로 1586년에 이곳을 방문하고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펜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남기고, 탑과 장식기단 그리고 천재나 그릴 수 있는 세련됨을 찬사하였단다. (그 당시의 포르투갈은 어떠하였을까? 이제 다음 여행목적지에 들어 있으니 다녀 와서 비교를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다.)
자 이제 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각 변의 너비가 469피트, 높이가 190피트나 되는 이 사원은 멀리서 보면 긴 통로가 중앙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석조건물로 보이나 가까이가서 보면 수많은 층을 이루는 탑들로서, 많은 방들과 베란다, 회랑들이 계단으로 이어지는 각각 다른 층, 단으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1층 전체의 벽을 이루는 회랑에는 빈틈 없이 조각이 되어 있어 이를 부조회랑이라고 부른다.
1층을 둘러 싼 회랑의 넓이는 약 1,200제곱미터나 되도록 어마어마한 크기로 세계 제일을 자랑 한단다.
그동안 제법 큰 사원들을 많이 보아 온 나의 눈에도 세계제일이라고 하여도 될만한 크기였으니 말이다.
이 조각들은 주로 양각되어 졌는데 어떤 곳은 음각으로 파여진 곳도 있었다.
많은 부분들이 관람객들이 손으로 만지면서 지나간 관계로 검게, 또는 반들반들하게 되어지기도 한 것을 보면 아직 이네들의 유적보호기준이 너무나도 허술한 것 같으다.
부조조각의 주제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인도의 전설과 경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앙코르시대의 전승기록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이 부조에서도 사람들의 크기가 계급에 다라 크게 조각 되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들의 기본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 고대나 현대나 다를바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길게 길게 이어진 부조는 회랑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돌면서 보아야 주제가 연결이 되면서 이야기의 타래가 풀려 나간다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가 두번째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서 나타나는 회랑이 남쪽으로 뻗어간 서쪽회랑이다. 이렇게 계속 회랑을 따라서 돌면 남쪽, 동쪽, 북쪽 회랑을 보게 되는데 이 서쪽 벽면에는 주로 전투의 장면들로 채워져 있었다.
죽고 죽이고…. 처참한 장면들이었느데 이장면들이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시를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는 거저 계속되어지는 인간의 역사의 한 단면이요, 어제의 인간이나 오늘의 인간이나 다를게 하나도 없으니 결국 내일의 인간 또한 똑 같을 것이요 그래서 역사란 되풀이 된다는 명언이 새삼스러워 질 뿐이다.
긴 회랑을 돌고 돌아 남쪽회랑에 와서도 계속되어지는 전쟁의 모습들이다.
이 곳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이끄는 크메르군대가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오는 승리의 행진을 묘사하고 있단다. 이 또한 서양의 역사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지 않는가 말이다. 고대 로마에도 승전 기념문이 있었고, 근세 파리에도 개선문이 있으니 말이다.
회랑이야기는 이즈음에서 그만 두기로 하자. 뭐 그림 역사공부하는 것도 아니니까.
부지런히 돌며 걸어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석녀, 이네들 말로 압살라(춤 추는 선녀)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요염한 자태로 춤을 춰 우리를 유혹하는데….보아도 보아도 끝이 없는 부조와 조각된 수많은 압살라.
어떤 조각들은 지나는 사람들이 하도 그 유방을 만져 손때뭍어 까많게 윤이나고 있었다.
돌고, 돌고, 오르내리고 또 돌다보니 모두들 지치는 모양이다.
돌 난간에 않아 한참을 쉰 후에 정원으로 나왔다.
자그마한 연못에는 몇 안되는 연꽃이 피어 있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이는 파문으로 수면이 잔잔하지가 않았다.
가이드가 저 사원의 탑이 5개인데 10개를 사진에 담아오면 선물을 준단다.
선물? 보다는 흥미가 동하여 이리 저리 보는데 파문이 이는 수면에 영상은 잡히지가 않고….. 근데 연못가 바로 발 밑의 얕은 곳은 잔잔하지 않은가….
캬메라의 앵글을 바짝 낮추어 수면에 5, 하늘에 5을 잡을 수가 있었다. ㅎㅎㅎ
끝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인데다가 다리도 지치고 배도 허기져 오니 모두들 이젠 먹으러 나가쟌다.
이렇게 캄보디아의 최고의 유적지 앙코르왓의 관광이 끝난 것이다.
무리들의 허기와 피곤을 달래주기 위해서…그리고 도 다른 볼거리를 보러 가기 위해서…..
해자를 건너 버스를 타고 가는 길목에 보이는 해자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고,정겨워 보였다. 전쟁후의 페허라지만 전쟁하고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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