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보이는 세상”을 시작하면서
얼마나 마음 설레이게 하는 단어인가요!
준비할 때에는 미지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가 하면
돌아 와서 되 돌아 보는 사진첩에서 아련히 풍겨나오는 추억으로 다시 그 시간을 그립게 하여주니 여행이란 단지 일상에서의 탈피만을 위한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일상을 벗어나 미지의 곳으로 찿아 다니면서 보는 세상은 우리의 삶에 또다른 활력을 불어 넣어, 일상이 되어 다가오는 내일을 좀더 기쁘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는 묘약이 되니 말입니다.
아직 다녀오지 못한 곳이라면 그 곳을 미리 가보며 나의 여행을 준비하며 읽는 여행기가 되고,
다녀 오신 곳이라면 지난 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는 여행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천천히
런던에서 아주 작은, 도시와 도시를 이어 주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맡긴 2시간의 비행후에 프라하에 내리니 날은 잔뜩 지프러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하였었는데….
세관통과도, 국경통과도 일사천리,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일정에는 내일부터 관광이 시작되지만 이 금쪽같은 시간을 호텔에서 죽일 수야 있는가?
비행장에서부터 호텔로 인솔해 온 임시가이드에게 내일일정을 보여 준 후시내 관광을 부탁하였다.
천문시계탑에는 꼭 올라가 보기를 바란다는 부탁과 함께….
버스가 없어, 전차와 전철을 타고 다닌 관광이었기에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프라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서브웨이를 타고 움직인단다.
티켓은 한장을 사면 그 티켓에 적혀 있는 시간 만큼 몇번이고 갈아 탈 수가 있단다. 그래서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당부를 한다.
노인네 들이지만 국민학생들 처럼 말들을 잘 듣는다.
아님 다른 별 재간이 있겠는가? 말도 모르고 거리도 모르니……
서브웨이를 타러 들어 가는 길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어쩜 그리도 깊게 파 놓았는지…..
재미있는 것은 전차나 전철 모두에 검표원이 없다.
믿는단다. 그러다가 가끔 불심검문을 하는데 그 때 걸리면 국물도 없단다. 벌금이 엄청 많아 모두들 잘 지킨다고 하며 우리보고 표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고 한다.
역도 깨끗하고, 열차도 깨끗하고, 타고 있는 사랍들도 순박한 것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모두들 배가 고파 하기에
제일 먼저 간 곳이 이곳 특식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Strahovskeho Klastera)”으로 갔다.
프라하의 옛 성곽이 시작되는,프라하에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원이라고 한다.
높으니까 전망은 당연히 좋겠지.
수도원의 이야기는 다음호로 미루고 프라하에 대해 조금 알아보기로 하자.
2차 대전 후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동유럽의 역사 속에 1993년에 슬로바키아와 평화적으로 분리하여 지금은 체코 공화국으로 불리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으며 수도는 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 브르노, 오스트라바, 즐린, 플젠 등이 있다.
크게 체히, 모라바, 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히는 라틴어로 '보헤미아', 모라바는 '모라비아', 슬레스코는 영어식으로 '실레지아' 또는 독일어로 '슐레지엔'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헤미안”이란 결국 이 지방 사람들을 일컷는 말인 것이다.
9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다.
이후 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세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로 즉위하였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점령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에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돌아 본 도시는 나의 뇌리에 밖혀 있는 “우중충한 공산국가의 소도시”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하여도 될 만큼 거리의 곳곳에, 빌딩의 벽면마다에 차있는 조각들과 그림이 예술적이었다. 다행히 2차대전이 끝난 후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휩쓴 종교와 민족과 이념이 뒤엉켜 일어난 내전에 휩슬리지 않아 많은 예술품들이 전화를 입지 않은 것이리라.
스트라호프 수도원
스트라호프 수도원 정문
스트라호프 수도원 정원을 거닐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1140년, 플라디슬라프 2세 때 처음 지어 졌으나 그 뒤 수차례에 걸친 전쟁(특히 얀 휴스의 추종자들과 카토릭간에 벌어진 30년 종교전쟁이 가장 심했던 곳이 이곳 프라하였다).과 화재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믿음은 또 다른 재건을 이루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물들의 많은 부분이 대체로 17~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기에 시대에 따른 여러가지의 건축양식들이 어우러지며 건립된 유서 깊은 수도원이란다.
특히 현재까지 17~18세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에 이제는 오래 되었지만 모짜르트의 시대를 재현한 영화 “아마데우스”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하였단다
특히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을 가미한 성모마리아 승천교회 안에는 모짜르트가 연주했다는 바로크풍의 오르간이 아직도 성당 안에 그대로 있어 요즈음도 사용을 한다고 하니 참 오래도 사용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잘 만들었으면….
허나 그 성당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 보지 못한, 유리 문 뒤의 성당)
1783년 수도원 해체령이 내렸을 때에는 학자들의 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해를 면하였고, 이후 수도승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1951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이 폐쇄되었다가1953년 체코국립문학박물관으로 바뀌었다,
1989년 사회주의 정권이 물러나면서 다시 수도원 기능을 회복하여
현재는 문학박물관이자 수도원으로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란다.
문학 박물관 안에는 수만권의 고서를 보관하고 있는 철학관과 신학관이 엄청난 규모와 내부의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는데….
이 또한 외모만을 볼 수가 있었다.
수도원 부속 건물들
허기사 하나 하나 다 보자면 얼마나 오래 있어야 겠는가?
또 본들 그게 수도사의 수도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혜택을 줄 것이고…..
언덕을 조금 내려 오니 수도사들이 기르는 자그마한 포도원이 나타나고, 그 뒤로 보이는 프라하의 전경이 넋을 잃게 만든다.
여기서 수확되는 포도로 성찬용 포도주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설명보다는 프라하의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쁜 것을 보니 결국 남을 수 있는 것은 사진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도 하늘이 개여오기 시작하여 어두웠던 우리들의 마음을 밝혀주며 포도원을 나와 언덕길을 내려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주었다.
그 옆에는 수만권의 고서를 보관하고 있는 철학관과 신학관이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는데…. 이 또한 외모만을 볼 수가 있었다.
허기사 하나 하나 다 보자면 얼마나 오래 있어야 겠는가. 또 본들 그게 수도사의 수도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혜택을 줄 것이고…..
여기서 수확되는 포도로 성찬용 포도주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설명보다는 프라하의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쁜 것을 보니 결국 남을 수 있는 것은 사진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포도밭. 멀리 성 비투수 대성당이 보인다)
언덕을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을 몇굽이 돌고 보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흐라트챠니 광장(Hradcanske Namesti)에서 인상작인 조각을 문 기둥위에 올려 놓은 대문을 지나면
바로 대통령궁이라 불리우는 대통령 집무실로 연결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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