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천문시계 탑으로 올라 간다.
토론토에서 부터 벼르고 별렸던 시계탑으로 말이다.
(시계 탑에서 본 프라하 구 도시)
천문시계탑(Pražský orloj, 발음 [prash-skee or-loi])
(천문시계탑)
사진으로 보는 모양부터가 복잡하기 그지 없어 설명을 듣지 않으면 시계를 보아도, 지금이 몇시인지조차 알 수 없도록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그러나 한 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된 시계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계가 있는 탑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프라하의 경관이 장관아라는 글을 읽었기에 꼭내 눈으로 보고 싶었으니까….
천문시계탑은 구시가 광장에, 옛 시청사 옆에 붙어 있는 탑에 있었다.
시계탑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의 원형틀은 해와 달, 그리고 기타 중요한 별 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천문판(astronomical dial)이다.
하단의 원형틀은 달력이다.
그리고 상단의 원형틀 위에는 두개의 창문이 있고 그 위에 황금빛으로 만들어 놓은 닭이 한마리 있다. 매 시간마다 정시가 되면 창문이 열리고 그 창문을 통해서 사도들의 행진(The walk of the Apostles)이라고 불리는 12사도의 조각상들이 지나간다. 행진이 끝나면 닭이 회를 치는 동안 창문이 닫히고 다음 시간을 기다린다.
자 이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천문판(astronomical dial)
이 시계탑은 중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 즉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계의 산물이다. 따라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므로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태양과 달의 궤도를 모방해내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천문판의 배경은 태양과 달, 12궁도판, 시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문판 중앙의 푸른 색은 지구를 상징하며, 그 윗부분의 푸른 색은 지평선 위에 떠 있는 하늘을 의미한다. 그 아래쪽의 붉은 색과 검은 색 부분은 지평선 아래의 하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해가 떠 있는 동안 태양은 푸른 색 부분에, 해가 진뒤에는 검은 색 부분, 그리고 여명과 황혼에는 붉은 색 부분에 위치한다. 왼편(동쪽)에 쓰여진 글씨는 라틴어로 ortus(해돋이)와 aurora(여명), 오른편(서쪽)에 쓰여진 글씨는 occasus(해넘이)와 crepusculum(황혼).
로마숫자로 적힌 금빛 부분은 프라하 시각(현재는 중부유럽표준시)을 표시하는 24시간이다. 하늘을 표시하는 푸른 색 부분의 금색선들은 한 해 동안 낮의 길이가 변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시계바늘은 한쪽 끝에는 시간을 가르켜 주는 태양의 모양이 달려 있고, 그와 일직선상의 반대편에는 중간쯤에 공모양의 원형이 달려 있다.
이 둥근 공모양의 반은 검고 반은 힌 색이다.이는 달의 변화를 아르켜 주는 것으로 힌색일 때에는 보름, 검은 색일 경우에는 그믐을 가르킨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보고 있을 때에는 음력으로 보름이어서 온통 힌 색-스테인레스 색으로 색각하면 된다-이었다.)
즉 시계판을 돌아가는 중간의 원형 안이 밑의 배경그림이 파란 것을 보여 주면 낯이고, 그것이 검은 것을 가르키면 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두장의 사진중에 위에 있는 시계판만 있는 사진은 낯 11시 52분에 찍은 사진이고 또 하나,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저녁 5시 33분에 찍은 사진이다.( 나의 시계와 한시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섬머타임 때문인지….. 물어 보지를 못하였다.) 이 둘을 비교하여 보면 무슨 말인지 조금은 더 쉽게 이해를 하겠지.
그런데 시계에 시간을 가르키는 바늘은 있는데 분을 가르키는 분침은 없다. 아마도 시계가 만들어 진 중세에는 분까지 알려주는 시계가 필요없었는지도 모르겠다.분명 시간을 위해서는 분도 필요한데 말이다. 허기사 초 단위로 사는 요즘과 달리 그 당시는 시 단위로 이루어지는 일도 급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지…그러나 그 때 벌써 이 정도의 정교한 시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데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어진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에는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달력
원판의 중심에 그려진 것은 구시가의 문장이다. 바로 바깥쪽의 작은 원들은 12궁도를 의미한다.바깥쪽의 큰 원들은 보헤미아 농민들의 생활로 12달을 상징한 것이다. 가장 바깥쪽의 지렁이들이 늘어선 것과 같은 부분은 1년 365일, 매일을 상징하는 성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달력 옆의 4개의 조각상 중 세 개는 세명의 동방박사를 의미하며(각각이 누구인지는 성서와 조각상들이 갖고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대조해보면 될 것이라는데…..황금와 유향과 몰약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하나? 황금은 왕에게 대한 선물이고, 유향은 대제사장에게 주는 선물이고, 몰약은 죽은 시체에 드리는 선물이라는 설이 있는데….) 천사는 또 누구일까? 그냥 천사?
사도들의 행진
낮 동안(오전 9시~오후9시) 매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마다 12사도와 다른 조각들이 움직인다. 시간이 되면 우선 시계판 오른쪽에 있는 해골(죽음을 상징)이 오른손에 감긴 줄을 잡아당긴 다음 왼손으로 모래 시계를 뒤집는다. 그리고 그 옆의 기타를 들고 있는 투르크 인(탐욕을 상징)은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천문판 윗 부분, 천사상 양 옆의 창문이 열리고 12사도(11명의 사도들과 성 바울)가 성베드로를 선두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행렬이 끝나면 가장 윗 부분의 황금 닭이 홰를 치고, 종이 울리면서 시각을 알린다.
시계판의 반대편에는 2개의 조각상이 더 있는데, 투르크 인 조각을 포함하여 이들은 모두 7대 죄악(단테의 신곡에 나오며, 자만, 분노, 색욕, 탐욕, 탐식, 시기, 나태)을 상징하는 데, 건너편 두 개의 조각상은 거울을 보고 있는 조각상은 허영이고, 돈주머니를 들고 있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모습이 상징하는 것은 탐욕이다(이 곳에서도 그 당시부터 유대안들이 어떠하였는지를 반영해 주는 증표이리라…..).
타종의 회수는 24시간제를 따라서, 오후 3시에는 15번 울린다. 종이 울린 후에는 탑의 꼭대기에서 고풍스런 복장을 한 나팔수가 나와서 나팔을 불어 시간을 다시한번 확인하여주는 세
레모니를 행한다.
그러면 이 시계는 과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시계와 천문판이 가장 먼저, 1410년 시계제작자 카단의 미쿨라쉬(Mikulas of Kadan)와 신델(Sindel)이라고 불린 얀 온드레유브(Jan ondrejuv)에 의해 만들어졌다. 1490년경 달력이 추가되었으며, 시계 전면부가 고딕 양식의 조각들로 장식되었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Jan Taborsky)가 수리를 했으며, 그가 하누슈(Hanus)를 시계제작인으로 언급한 문서를 남김으로써 한동안 하누슈가 천문시계탑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었단다.
하누슈에 대해서는 전설이 전해지는 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이 다른 곳에서도 그가 이런 걸작을 만들까봐 우려해 하누슈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다. 복수를 결심한 하누슈는 조수에게 도움을 청해, 시계탑에 다시 올라갔고, 어느 누구도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를 부쉈다고 한다. 그가 시계에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시계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죽거나 미쳐버리곤 했단다.
시계를 올려다 보는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탑으로 올라 갔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 허기사 어느 관광지에서도 돈을 더 내고 들어가면 그만큼 더 볼 거리가 있다는게 입증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여기는 걸어서 올라 가는 것은 공짜란다.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어제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서 부터 지금까지 무려 몇시간인가! 비행기에서의 새우잠이야 잠 축에도 들지 못하니, 이 늙고 피곤한 몸으로 그 높은 탑을 걸어 올라가? 택도 없지.
가이드가 사온 티켓을 보니 약 4 유로가 되는 것 같다.
덕분에 편안히 엘레베이터를 타고 그 꼭대기에 오를 수가 있었다.
좁은 탑 꼭대기지만 탁 트인 전망에 시원스레 불어 오는 바람. 마침 구름마져 걷혀 저녁해를 받아 빨간 지붕들이 더 빨갛게 빛나는 정경은 올라와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틴 성모 교회, 조금 떨어진 곳에 우뚝 선 카를 4세 다리의 임구인 탑, 조금 더 멀리에 아까 보았던 성 비투스 대성당,…….
사진이 찍어 준다 하더라도 그 감정이야 어찌 담을 수가 있겠는가.
두바퀴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는 내려 와야만 했다. 밑에서 안 올라 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저녁먹으러 나가야 하니까.
또 다시 전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 온 호텔, 짐을 찿아 수속을 하고 내려왔는데도 아직 다음 팀이 도착을 안했다.
피곤한 몸에 그래도 기다려야지. 아마도 비행기가 연착을 한 모양이다.
8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갔다.
프라하에 있는 한국음식점이다.
아직은 첫날이라 한국음식이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구에서 먹어 보는 한국음식은 맛도 좋은 편이 었다. 양이 조금 적어서 그렇지.ㅎㅎㅎ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얀휴스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데리고 와서 잠시 자유시간을 준다.
늦은 밤이건만 광장은 아직도 활기차게 움직이며 많은 사람들이 밤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밤의 야경또한 꼭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을 일깨워 준 귀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내일부터는 어떤 하루 하루가 펼쳐질까?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동 유럽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라하 1 동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 (0) | 2010.07.17 |
---|---|
프라하 8 카를 4세 다리 (0) | 2010.07.17 |
프라하 6 얀 후스 종교개혁 광장, 틴 성당 (0) | 2010.07.17 |
프라하 4 성 비투수 성당 (0) | 2010.07.17 |
프라하 3 프라하 성, 대통령 궁 (0) | 201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