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가정을 생각하며
마태 18:1-6, 마가 10:13-16
지난 달에는 죽음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에 죽기는 죽어야겠는데, 이왕이면 잘 죽어야겠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잘 살기 위해서는, 아니 비단 잘 살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잘 못산다고 하더라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 또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기도 합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지요?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또 무엇입니까? 가정의 기초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정이 필요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가정이 필요하고 자손을 번성하기 위해서도 가정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 한 평생이 가정에서 시작해서 가정에서 끝나니 5월 한 달을 가정의 달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1년 12달이 가정의 달이 되어야겠고, 아니 사람 한 평생이 가정의 날들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정과 가족, 무엇이 다를 까요?
가족은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모든 가정들을 합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하면 거기에는 우리 부모님의 가정이 있고, 나의 가정이 있고, 또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가정이 있습니다.
그럼 가정은 무엇입니까?
내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의 단위가 가정입니다. 제일 작은 사회의 단위입니다.
우리가, 어느 누구나 태어날 때에는 부모님의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부모님의 자녀가 되지요.
부모님의 자녀인 어린아이로 자라다가 사춘기가 지나고 성년이 되면 늘 결혼식장에서 읽혀지는 성경말씀대로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어 (엡 5장 31절) 다시 한 가정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우리를 되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벌써 오래 전의 일들이기는 하겠지만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님의 자녀로서 부모님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모님의 말씀에 어떻게 대하였는 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고 또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말씀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를 한번 솔직하게 비교하여 보세요.
우리도 옛날에 부모님으로부터 주의를 듣거나 꾸중을 들으면 분을 삭이기 위해서 소위 세대차라고 자위하며 지나오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 또한 대화를 하려하면 세대차라고 그러지요?
그래서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속 마음을 안다고들 말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세대차 속에서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대차는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또 이런 세대차이를 이어 주는 곳이 바로 가정이기도 하고요.
여러분들은 자랄 때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면 플다크의 영웅전? 헷세나 톨스토이 아니면 하디나 모파상의 작품들?
우리가 자라는 과정에서, 우리의 심성을 형성시켜가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로부터 자극을 받습니다.지식을 위해서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인성을 위해서는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심성을 위해서는 독서나 강연을 통해서 흡수하게 되지요. 교회 또한 굉장히 필요한 성심을 심어주는 곳이기도 하지요.
30년 후의 부인의 모습을 보려면 장모를 보라는 말이 있지요?
3살적 버릇이 80가지 간다는 속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3살 때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까? 부모님이지요. 할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데이 케어, 아니면 베이비 싯터의 영향 속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이 참 많지요?
부모들이 좀 잘 살아보겠다고, 또 잘 사는 것이 경제적인 부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며 맞벌이를 하다 보니, 부부가 함께 직장에 나가고, 가게에 나가고 그러다 저녁에 집에 와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맞겨졌던 자식을 보니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미안스럽기도 하여 그 미안함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점점 자기 중심의 이기주의적인 사람으로 자아가 형성되며, 가정의 중요성보다는 돈의 중요성에 더 중점을 두는 사람으로 커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에는 가정의 중요성이 희박하여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지요.
가정은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에, 결혼은 거저 쾌락을 위한 합법적인 과정으로 생각하다 보니 동성끼리도 결혼을 하여 가정이랍시고 이루어 놓았다고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3개의 가정을 지니게 됩니다.
한번은 내가 우리 부모의 자녀로서 생활하는 가정이요 두 번째는 내가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면서의 가정이지요.
그럼 세번째의 가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죽은 다름에 하나님 아버지의 가정에서 자녀로 영원히 살아가는 그 가정이 되겠지요./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서 우리가 자랄 때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를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가?
물론 모두들 다 잘 하셨으리라 믿어집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보니까 말이예요.
모두들 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키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가정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말씀하시면서도 오늘 본문에 보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왜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가요?
어린아이는 무엇일가요? 어린 아이의 정의는?
순수하지요.또 욕심이 없지요.
그런데 정말 욕심이 없나요? 장난감 가게 앞에서 있는 어린아이를 못 보셨나요?
미움, 시기심이 없나요?
형제끼리 싸우거나 다투는 아이들을 못 보셨나요?
어린 아이들에게도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욕심도 있고 미움도 있고 시기도 있고 질투도 있습니다. 단지 그 강도가, 강퍅함이 우리 어른들보다 좀 연할 뿐이지요.
그런데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까?
어린아이와 어른의 다른 점은?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순종을 하지요.
아니 마음속으로부터 존경 어린 순종은 안 하더라도 보모님의 말씀을 듣지요.
일찍 들어오라면 일찍 들어오고, 공부하라면 하는 척이라도 합니다.
왜일까요?
부모에게 기대어 살기 때문입니다. 자립하지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떠나서는 혼자 살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고 따름니다.
또 부모가 이렇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일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 걱정 안 해도 되지요. 부모님이 다 챙겨 주시니까요.
그런데 우리 어른은 어떻습니까?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면 내가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내가 이루었다는 자만 감이 다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데, 내가 하는 데 누굴 믿고 의지합니까?
나를 믿고 나의 능력을 믿고 나의 지식을 믿으면서 살아가다 보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부모님을 믿어요? 이젠 나이도 많아져서 오히려 내게 기대어야 하는 부모님을 믿고 또 그네들에게 의지해요?
아니지요? 눈에 보이는 부모도 안 믿고 따르는 데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따러요?
아니지요.
이 믿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고 이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마음 대문에 어린아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세 번째 가정,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만을 버리고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믿고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입을 까, 무엇을 먹을 까 걱정하지 말라고… 즉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 같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꿈이요 소망입니다. 그 꿈이 이루어 지려면 그 자녀들이 자라서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보고 듣고 배우는 일차적인 책임이 우리 부모에게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여야 겠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지요. 자녀들이 순종할 때 교회에 함께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합시다.
교회에 다니면서 나쁜 것 배우는 확률 극히 적지요.
어른들이 교회에서 서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예요.
떡을 달라는 자녀에게 뱀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비록 뱀을 떡으로 잘못 알고 주는 무지는 있을 수 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들은 그 무지에서도 벗어나야겠습니다.
이 무지에서 벗어나는 지혜는 어디서 오겠습니까?
우리 하늘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순종하는 그 길이 첩경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하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따르며 그의 집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그래서 한 가족이 되는 영생을 누리는 온누리 가족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2004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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