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 비투스 대성당 (Katedrála svatého Víta) 동유럽편 프라하

알폰스 무하 작품의 아르느보양식의 채색유리
그림들이 다른 채색유리와 대조를 이룬다.

조금 확대 해 본 그림. 이게 그림이 아니고 색 유리를 잘라 붙여 만들었다니.....

또 다른 유형의 채색유리


성당 전면에 있는 대형 채색유리.
이리로 햇볕이 들어 올 때의 장엄함을 보았어야 하는데.... 그 때엔 날이 조금 흐렸었다.

입구 위에 있는 장미의 창. 주그마해 보여도 직경이 10.5 미터. 35피트밖에 안되는 우리 집 전 면적보다 크다.
저녁의 석양이 이리로 들어 오게 설계 되었는데.....

조금 더 확대한 모습


성당의 내부








얀 네포므츠의 관. 물경 3톤의 은으로 만든 관이다.

관에 부착된 조각들. 이게 전부 은이다.

얀 네포므츠를 심문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성당 벽에 부착된 조각들의 셈세함.

파이프 올간의 일부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상과 화려하게 지어 진 성당.
무엇을 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벽에 봉안된 관들이다.
왜 성당에는 이렇게 관들이 많을까...?

악귀를 쫒아 내는 또다른 악귀들?












성당의 전면
너무 커서 한 장에 다 들어오지가 않았다. 이럴 때 와이드 앵글 렌즈가 필요한 건데....

성당 마당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워진 성당과 이짚트의 태양신 숭배에서 온 오벨리스크가 한데 서 있는 것이 어째 좀......
허나 로마의 베드로 성당 앞에도 이짚트에서 들어 온 탑이 서 있으니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성당의 뒷면 성당 안에서 보면 앞면.
이렇게 세상사 모든 일들에는 앞과 뒤가 공존하는 모양이다.
앞이 있기 때문에 뒤가 있으니까.....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대주교좌로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뛰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1989년에 성 비투스, 성 바츨라프, 성 보이톄흐 대성당 (Katedrála svatého Víta, Václava a Vojtěcha)으로 개명하였다. 이름이 길어도 졌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성당이니까….
313년 경 고문끝에 순교한 성인 비투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
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였다. 그가 1352년 숨을 거두자 당시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었고, 이후 파를러의 아들과 또 다른 건축가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갔다.
공사는 후스(Jan Hus)의 종교개혁, 즉 30년 종교전쟁 때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완공되고, 17세기에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1753∼1775년 사이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첨탑 높이 100m에 이른다.
지붕을 받히는 12개의 기둥에는 12사도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들로 장식이 되어있다.
오랜 세월의 연륜은 옅은 베이지색 돌에 섞인 철분을 산화시켜 벽 전체를 검게 변하게 만들었기에 이 검은 색을 벗겨내는 일이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처음 지운 곳이 다시 검게 될 테인데…. 그렇다고 원형이 손상될까봐 조심하노라 일을 서두르지도 않는 이네들이니 말이다.
하늘 높이 솟은 첩탑 아래 웅장하게 지어진 석조건물의 구석 구석에는 괴물들이 입을 벌린채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그 밑에 줄을 선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나 하나의 모습이 다 다르게 만들어 진 괴물들.
가이드의 말이 이 괴물들의 주된 임무는 성당 안으로 들어 오려는 악귀들을 쫒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저렇게 입을 아~ 벌린 채 독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란다.
그런데.....비가 오면 빗물도 그 입으로 떨어질 테인데….
그 빗물을 맞으면 절대로 안되겠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볼 때엔 거저 검으티티하던 채색 유리가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라는 스테인드 그라스가 위엄을 더 해 주는 성당 안쪽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제작한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이란다.
다른 벽에 있는 스테인드 그라스와는 그 기법이 다른, 아주 아름다운 색감의 스테인 그라스다.
그 조각 하나 하나가 붓으로 칠 한 것이 아니라 유리 자체의 빛을 깍아서 조립한 그 큰 성화.
이를 이루고자 하는 예술가의 혼과 믿음의 정열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여주니 예술의 힘, 믿음의 힘의 대단한 그 끝은 과연 언제까지, 어디에로 이어지는 것일까?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짓다 보니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건축기법에 또 변하는 화풍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전개되어지는 아름다운 채색유리에 취하고, 33미터에 이르도록 높은 천정에 압도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성당의 제일 안쪽인 앞의 커다란 스테인 그라스 밑에 오게 되었다.
누구의 작품이라는 이름은 모르지만(분명 누구인가 있을 것이다. 전하여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가이드가 모르던지…) 또하나의 아름다운 대형 채색 유리 성화가 밝게 비춰 온다.
아마 이제는 날이 개여오는 모양이다. 들어 올 때까지만 해도 찌푸둥 했었는데….
그 오른 쪽에 화려한 은으로 만든 조각들과 관이 놓여져 있었다.
바로 프라하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얀 네포무츠의 관이다.
그 옆에는 얀 네포무츠을 심문하는 바츨라프 4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 상황이란 바로 이런 이야기인 것이다.
얀 네포무츠는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신부로 재직하던중 고해성사를 통하여 왕비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아내의 비밀을 국가 안위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한 바츨라프 4세가 얀 네포무츠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통해 알게된 왕비의 비밀을 공개할 것을 강요하며 고문하였으나 끝까지 비밀을 지켜내었단다.(글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짜 국가의 안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외도한 남자를 찿기 위해서 였을까? 사람 마음을 어디 알 수가 있어야지.허허허.)
이에 격분한 바츨라프는 얀 네포무츠신부의 혀를 자르고 죽인 후 돌멩이를 달아 블타바강에 그 육체를 던져 버렸는데, 얼마 후 영롱한 별 다섯이 나타나면서 그 시신이 떠오르는 기적이 일어 났다고 전한단다.
이제 내일 카를다리에 가면 이 신부의 동상을 또 다시 보게 되된다니 그 때 다시 보아야겠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체코 왕들의 석관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본당 주위에는 체코의 수호성인 성(聖) 바츨라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화려한 예배당이 있었다.
예배당의 벽면은 보석과 도금으로 장식되었고, 여러 성인들과 성서 속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어둑컴컴한 성당 안이기에 사진을 찍기가 용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쉴 새 없이 셧터를 눌러대다 보니 어라, 일행들이 없는게 아닌가! 이런 낭패가…….
작년에 중국의 이화원에서 부인을 잃어버려 혼이 났던 기억이 와락 되 살아 나면서 흐르는 식은 땀!
정신없이 뛰어 나가 주위를 보았건만 보이느니 모를 사람들 뿐이 아닌가?
왔던 길을 생각하며 내려 갔음직한 길로 한참을 가도 안보인다.
에라, 이럴 때에는 잃어 버린 곳에서 기다려야지! 하며 다시 성당 앞으로 뛰어오니 다른 한국 팀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혹시 가이드끼리는 연락이 될까 해서 물어 보려는데…..
저기서 Choi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와! 안도의 한숨!
실인즉은 내가 사진을 찍노라 늦은 줄 알았는데 일행들은 다른 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던 것을 내가 놓치고 지나 왔던 것이 아닌가! 저런 변이 있나!
공연히 다리품만 팔고, 또 식은 땀까지 흘리지 않았었나 말이다.
그래도 빨리 합류해 질 수 있게 하여 주셨기에 감사의 마음을 올려 보내드렸지.
장엄함에 눌린 채 정신없이 보며 사진찍으며 돌아 나온 성당을 뒤로한 채 계속되어지는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계단으로 이어진 언덕길 왼쪽은 성 벽이고 오른쪽은 집들로 이어져 한참을 내려간다.
이제야 프라하 성이라는 이름을 실감하게 되는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낮아지고, 한편으로는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이 성벽의 위용을 보고서 말이다.
Seeing is beliving! 이란 말이 이래서 생겨나게 되었겠지.ㅎㅎㅎ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조금을 더 내려가다가 아름다운 정원에 들어 섰다.
한 편에는 공연장의 무대같은 넓은 공간이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지붕아래에 있고, 잘 다듬어 진 정원에는 곳곳에 서 있는 동상, 물줄기를 품어내는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발렌슈타인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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