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소나기

천천히 chunchunhi 2020. 7. 4. 07:56

소나기가 한바탕 내렸으면 참 좋을 텐데....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이 퍼뜩 고개를 내민다.

 

소나기   2003-06-30

 

어제, 일요일,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하이웨이에서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도록 푸어 붇는 빗줄기가 운전을 하는 데는 부담이 되었지만

그 빗줄기를 보며 느껴지는 시원 함은 비단 무더웠던 며칠동안의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시커먼 먹장구름 사이로 번쩍이며 치는 번개를 보는 것 또한 즐기는 경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몇주
전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소나기의 유래를 생각하며 혼자 슬며시 웃었다.

그 예화가 조금 더 이어져서 이렇게 되면 어떨까 하고...

이렇게 이어졌으면…. 하는 이야기


" 그 두 농부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서로 소 내기를 한 게 아침나절이었다.

비가 안 올 것이라고 장담한 농부는 밭을 갈러 나가고, 비가 올 것이라고 우기던 농부는 이웃 마을에 시집간 딸이

아들을 낳았다기에 부인과 함께 미역 줄기를 들고 소 달구지를 타고 산 너머 이웃 마을로 나들이를 하였다.

몸 져 누운 딸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손주의 얼굴을 잠시 본 후엔 마누라에게 등 떠 밀려 마당에 나와
문간에 걸어 놓은 검정 숫과 새빠알간 고추를 서로 얽혀 꿴 새끼줄 너머로 파아란 하늘을 보며 흐뭇한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올 때엔 걱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비가 온다고 하였는 데 비가 오지를 않았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면 소를 이웃집 김서방에게 주어야 될 판이니

잠시 본 손주의 귀여운 모습보다도 앞으로 밭갈이할 걱정이 앞서고, 또 마누라의 바가지는 얼마나 드세질까?
허나 약속은 약속이니 집에 도착하는 대로 소를 끌고 김서방네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소를 끌고 오는 김서방을 만났다.

"어! 원 일이여? 나가 지금 소를 끌고 자네 집으로 가는 길인디...

워째 비가 안와 뿌렸는지..... 속 상해 죽겠구먼..."

"아니 자네는 또 원 일인겨? 아 마른하늘에 번개 친다고 밭갈이 한창 하는디 먹장구름이 끼며

어찌나 심하게 비가 오던지... 그래 마누라 몰래 소를 끌고 오는 길인디"

그 둘은 서로 쳐다보며 파안대소, 크게 크게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노을이 붉게 산등성이 위로 타고 있었다.

"그래 이게 우리의 소 내기여! "


소나기는 이래서 지극히 지엽적인 모양이다.

옛날, 아주 옛날에 국어시간에 읽던 황순원씨의 "소나기"가 생각이 나서

옆에 조수석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부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저 여자, 비를 흠뻑 맞히면 조금 볼 품이 살아날 텐데....'

'글쎄.... 이젠 더 보기 싫을까?'
 

히히거리며 혼자 웃노라니
어느 새
시커먼 먹장구름이 엷어지며 해가 얼굴을 내민다.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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