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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 - 요르단

천천히 chunchunhi 2020. 8. 7. 08:48

11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 - 요르단

 

, 두사람이 걸어 만든 오솔길이 여러 사람이 걷다 보면 길이 되고, 등짐을 진 낙타들이 오가게 되면 교역로가 됩니다.  수많은 병거와 군인들을 대동하여 이웃을 침공해 가며 더 넓어진 길은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라고 부르지요.

이 길을 따라서 기원전 722년경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5세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앗수르 통치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여러 민족을 그리로 이주시켜(왕하 17:24) 혼혈정책을 펴며 민족말살을 시도함과 동시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왕의 대로를 통해 앗수르로 끌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 포로들 역시 앗수르의 할라와 하볼과 메데 사람의 여러 고을에서 이방민족과 합쳐진 혼혈 민족이 되고 말았지요.

이들이 성경에 나오는사마리아인들이요, 요즈음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남왕국 유다에서 정체성을 계승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야곱, 즉 이스라엘의 후손들 중 10지파들이 이민족과 혼혈이 된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럼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세운 남왕국 유대는 어떠하였을까요?

BC 605, 앗수르가 몰락하면서 급부상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왕의 길을 따라 바벨론으로 돌아가며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가 끌려가게 되었지요(1:3).

1차 바벨론 유수(幽囚) 가 시작된 것입니다.(왕하 24:7) 

 

BC 601, 바벨론이 애굽과 다시 한번 전투를 할 때 애굽 편을 든 18대 왕, 여호야김이 죽고, 이후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데 이것이 2차 바벨론 유수(幽囚), 이때 에스겔 선지자가 포로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37년 만에 풀려나 죽을 때까지 좋은 지위를 누리며 살았다네요.(왕하25:27∼30).

여호야긴에 이어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B.C. 587. 18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바벨론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왕하 25:1∼3)

이때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짓밟히며 부서졌지요. 성전과 왕궁은 물론 귀인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결박당한 채 백성들과 함께 끌려갔습니다.(왕하 25:7)

이 비극의 3차 바빌론 유수(幽囚) 길 역시 왕의 대로들 통과하였습니다.

 

바벨론 역시 페르시아에 함락 되고, 에스더가 새로이 강자가 된 페르시아의 왕비로 등극하는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이들은 민족 일치를 강화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정립, 경전을 정리하여 구약성경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BC 444년 에스라가 2차로 귀환하고 나서 14년이 지난 뒤에 느헤미야가 3차로 동족을 이끌고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으나 유대인 가운데 일부는 바벨론에 남아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하였으니 이들이 후일디아스포라의 유래가 되었던 야곱, 즉 이스라엘의 후손들인유대인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또 후일 유다 지방에서 완전히 쫓겨나 세계로 흩어지면서도 흩어진 곳곳에서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야훼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유대인이라는 구심점을 이루기 위하여 유대인끼리 근친혼도 많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혼혈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유대율법을 따르면 그 혼혈자녀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사용하였기 때문에유대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관습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혼혈 민족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유대인의 외모는 유럽인, 미국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동양인 등 각양각색으로 나타납니다.

유대인들 간에 피부색 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 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고 야훼 신앙을 가진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준다고 합니다.

 

결국이스라엘이 된 야곱의 후손들 10지파들의 운명과 2지파의 운명을 극명하게 바꾸어 놓은왕의 대로(King's Highway)”는 이집트 12 왕조의 파라오, 세소스토리스 1세가 처음 북방 무역의 길을 열기 위해 가나안 경영에 착수하며 만들어진 길로, 지금의 요르단을 남북으로 길게 종단하여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 힛타이트를 잇는 대상들의 무역로였을 뿐만 아니라, 수 백년 동안 명멸하는 여러 제국의 군대와 문물이 오가던 주요한 길이였습니다.

여기에 동방에서 시작된 비단길이 이어져 왕의 대로는 더욱 길어지며 이 지역을 장악했던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 터키 등 모두 독특한 문명의 흔적을 이 땅 여러 곳에 남겨 놓았기에 오늘날 이곳은 소중한 문화적 유적들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모래 속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이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잘 진열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역삼각형 모양으로 홍해로 삐죽 나온 시나이반도의 왼쪽은 스웨즈 만(Gulf of suez)이라고 부르며 스웨즈 운하를 이용하여 지중해로 들어사는 뱃길이 되고, 오른쪽은 아카바만(Gulf of Aqaba)이라 부르는데, 이 만이 끝나는 지점은 4개국이 국경을 마주하며 서로가 관광지로 개발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가 되어있습니다.

 

제일 왼쪽의 이집트에는 타바(Taba)라는 도시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이루고 있고, 이스라엘 쪽에는 에이랏(Eilat)이라는 휴양도시가 11km의 해안을 차지한 후 요르단의 아카바(Aqaba)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카바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이 나오지요.

 

중동지방의 성지순례에는 이집트의 시내산과 요르단의 느보산과 페트라에 이어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는 여정이기에 이 세 나라의 국경 통과는 필수적인 고역의 절차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들어가기도 까다롭고 또 나오기도 까다로운데 여기를 두 번씩 지나야 하니 말입니다. 

결코 넓고 평탄하지만은 않은 왕의 대로 경험이었답니다.

 

모세도 민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38년간 헤매던 광야가 바로 오늘의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광야 지역이었고,그가 숨을 거둔 느보산도, 그의 형 아론의 무덤도, 그리고 40년에 이르는 방랑 끝에200만 명이 넘던 출애굽 유대민족 중 오직 2명만 남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유해들도 이 곳 사막에서 산화된 후 에야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200만 명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역사의 땅을 가로지르는 역사의 길, “왕의 대로를 따라 우리도 느보산으로 가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볼 수가 있으려는지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 페트라 방향     
왕의 대로
왕의 대로와 사막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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