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서유럽 대가리

34 피렌체(Firenze) 5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천천히 chunchunhi 2019. 6. 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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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피렌체(Firenze) 5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에서는 교구장인 주교가 상주하는 “주교좌 성당”으로 보통 대성당이라고 한다라고 25회에서 설명을 하였었다.

라틴어 도무스(domus)가 어원으로 영어로는 돔(dome)이며, 반구형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태리에서는 “주교좌 성당”이기에 여러 곳에 두오모가 있다. 그러나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피사에 있는 성당이 특히 크고 유명하기에 이 세 곳의 성당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마치 파리의 노트르담 처럼….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즉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세계 곳곳에 많은 성당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이 되었는데, 복잡한 신학적인 배경이야 우리 같은 범인이 범접할 분야가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431 6 22일부터 에베소의 테오토코스 성당에서 열렸던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신성에 대하여 내린 결정 이후 수많은 교회들이 더 크게, 더 아름답게 지어지며 마리아에게 봉헌되어 온 것이 유럽의 역사이며 또 성당의 역사이기도 한 것만 알아 두기로 하자.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저의 블로그  성지 순례중 에베소를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chunchunhi-c/8090194)

 

피렌체의 두오모는 1296년에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고딕양식으로 디자인하여 초석을 놓은 후 1446년에 완성되었으니 150년의 세월이 걸린 건축 기간이다.

유럽을 돌다 보면 100년 혹은 200년 이상 걸려 지어진 성당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워낙 크게, 화려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지어 졌으니까.

더군다나 이 시기엔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시민 의식이 깨어나던 문예부흥 운동이 태동하던 때가 아닌가?

그러니 세월에 따라 여러 명의 건축가가 뒤를 이어 가면서 담당하다 보니 성당의 설계도 유행 따라 고쳐 지고, 크기도 커져 가며 1418년 대성당을 완성시켰지만 천장은 완성을 시키지 못한 채로 뚫려 있었다. 지붕 지름이 너무 넓어 원형지붕을 올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419, 성당 건축 재정을 지원하던 피렌체의 또 하나의 부유한 모직물 산업길드 아르테 델라 라나(Arte della Lana)”는 대성당 돔의 설계안을 공모하는 대회를 열기에 이르렀고, 바로 이 즈음에 세례당 문 조각의 공모에서 떨어진 브루넬레스키가 십수년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로마에 가서 판테온도 보고, 멀리, 오늘의 이스탄블인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성 소피야성당”을 보며 견문을 넓히고 피렌체로 돌아온 것이다.

 

이 공모에서도 세례당의 문 공모 때처럼 여러 참여자들 가운데 로렌초 기베르티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마지막 결선에 올랐으나 이 대회에서는 브루넬레스키가 당선되어 설계 의뢰를 맡게 되었고, 기베르티가 조수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당 문을 만들면서 동시에 조수로 임명된 기베르티는 18년 전 세례당 문 공모에서 자신에게 패한 브루넬레스키의 돔 공사 계획을 무시하며 말도 안 된다고 말을 퍼트렸다.    일단 세례당 문 공모에서 인정을 받았던 기베르티로부터 크게 공격받은 브루넬레스키는 아픈 척하면서 로마로 떠나며 기베르티에게 모든 계획을 넘겨주었다.  

교회에서 큰일을 하다 보면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예나 제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 또한 감당할 만한 시련이겠지만….

그러나 곧 기베르티는 전체 계획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는 것을 시인하고 다시 세례당 문 작업으로 돌아 가고, 1423년 브루넬레스키가 돌아와 독점적인 책임하에 인계 받은 후 그때까지 없었던 “2중 벽의 기상천외한 공법으로 1436년에 돔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피렌체 두오모는 크기와 규모도 놀랍지만, 그 아름다움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공법의 산물이었다.

100년 후인 1547 1 1, 70대에 접어든 미켈란젤로가 로마 교황청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두오모 설계를 해 달라고 부탁을 받자...

피렌체 두오모 보다 더 크게 만들 수는 있어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하니 미적인 완성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말한 대로 그의 책임하에 완성된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이 돔의 규모를 뛰어넘게 되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거대한 석상은 지금도 대성당 광장에 있는 카노니치 궁전 바깥에 앉아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피렌체 전경의 중심이 될 돔을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올려다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만일 35년 전에 세례당 문 공모에 당선이 되었더라면 저 두오모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완성이 되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열린 천장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세계에서 제일을 선호하는 DNA를 가지고 있는 가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하면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떠올리게 된다. 1990년까지는 그러 하였다.

하지만 1990910일 이후 세계 최대의 성당은 유럽도 미국도 아시아도 아닌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영어이름: 아이보리코스트)의 수도, 야무수크로에 있는 성모 평화 대성당이다.

콘크리트 기둥과 대리석을 조립식으로 축조하여 3년만에 완성 시키었기에  사람들로부터 “영혼 없는 건축”이란 말을 들을 지언정 집권자의 과대망상을 충족시켜 준 산물로, 높이 170m, 33 8천여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여가 가능한 세계최대 성전이 된것이다.

그 다음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고, 밀라노 두오모는 5, 피렌체 두오모는 13위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건축의 비결이 다 풀리지 않은 채 수많은 지진을 견뎌내며 서 있는 터키 이스탄블의 그 큰 성 소피아성당의 경우는 가장 큰 성당 Top15에 들지 못한 채 겨우 20위 정도 되는 것 같다. 영혼이 없는 면적으로만 따지면 말이다.



예배자 보다는 관광객으로 항상 바글거리는 피렌체 두오모 정면.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세례당이다.




현란하게 화려하고, 정교하게 치장되고 조각 된 정면

미켈란젤로가 “피렌체 두오모 보다 더 크게 만들 수는 있어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단다.

카노니치 궁전 바깥에 앉아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피렌체 전경의 중심이 될 돔을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올려다 보고 있는 브루넬레스키


https://m.youtube.com/watch?v=wxR0Y4Fx88E&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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