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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천천히 chunchunhi 2017. 11. 1. 10:56


3회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역사야 알면 좋지만 공부하기에는 좀 지루하니까 필름 카메라는 좀 건너뛰고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서 조금 더 드려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이 독일을 분할 점령하였습니다.

이 때 미국에서는 독일의 광학기술자들을 많이 미국으로 이주시키었고, 소련은 독일의 로켓기술자들을 많이 소련으로 데려갔었습니다.

그 당시 벌써 “칼 자이스 렌즈”하면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었으니까요.

로켓을 또 어떻습니까?

영국이 바다건너 날아오는 로켓에 얼마나 혼쭐이 났습니까?

소련은 이것을 눈여겨보았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 냉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때의 광학기술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렌즈를 개발한 결과 미국에서는 U2기라는 정찰기를 만들어서 고도에서 소련영토의 사진을 찍어서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참고:196051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최고도를 유지하며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의 방공망에 걸려 우랄 산맥 스베르들롭스크 시 상공 약 70,000 피트(21,336 m) 지점에서 소련군의 S-75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조종사 프랜시스 개리 파워스는 낙하산으로 탈출했으며, 소련군에 생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동서의 긴장관계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이 소련에서는 우주선을 쏘아 올려 미국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Sputnik" 이라는 우주선을 1957 10월에 발사하였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지상에서의 냉전은 우주전쟁으로 확전 되었지요.

우주전쟁이란 우주에 있는 항성, 아니면 달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보다는 우주에서 적국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사진을 찍어도 그를 현상하여 보려면 일단 지구로 돌아 와야 되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이 겠습니까?

그리고 돌아 온 후에 현상하여 볼 때에는 벌써 시차가 그 사진의 필요성을 많이 감소한 후가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현상할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 연구하던 중 1957년에 “드럼 스캐너(Drum Scanner)”라는 것이 만들어 져서 빛의 명암을 디지털 신호로 바꿀 수 있게 되었지요.(Russell Kirsch의 작품입니다.)

이 방법이 개발되자 제일 먼서 1959년에 상용으로 응용한 곳이 Xerox 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복사기! 하면 Xerox라는 대답이 주저 없이 나오게 되었지요.

 

1969년에 Willard S. Boyle George E Smith라는 사람이 함께 CCD(Charge Coupled Device)라는 센서를 발명하여 최초의 디지탈 영상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공로로 두 사람이 2009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현상이 필요 없는 카메라를 만들 수 없을까를 고심하던 중 1973년에 Kodak의 연구원이었던 Steven Sasson이라는 사람이 CCD 형식의 센서를 이용해서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상당히 커서 무게가 8파운드나 되었지만 화소의 사이즈는 불과 0.1 mega pixels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러니 일반 대중을 위한 카메라가 될 수가 없었지요.

허나 이때 내 디딘 한걸음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디지털 카메라로 진화하였으니 그 처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이후로 꾸준히 센서가 개발 되었지만 아직도 센서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몇 안 되고, 그나마 그 회사들이 KodakRoyalty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스틸비디오 카메라가 초기에 보급되지 못한 이유는 가격도 문제지만 텔레비전의 화면에도 못 미치는 나쁜 화질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필름카메라에 비해 심하게 떨어지는 화질을 신문이나 인쇄매체에 사용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일본 언론은 1984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대회에서 스틸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그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기자들이 현상 인화 과정에 시간을 뺏기는 것과 달리 스틸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한 일본기자들은 현장에서 생생한 사진을 전화선을 이용해 즉석 전송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기자들이 스틸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한 이유는 개막식 사진을 당일 신문 마감시간까지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필름카메라를 이용한다면 가까운 현상소(암실)까지 가서 현상 인화하고 이를 다시 사진 전송장비를 이용해 전송하는 시간만큼 느려질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비록 화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개막식과 동시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실시간 사진 전송이 이루어진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 엇습니다.

이렇게 일본 신문사의 전자 스틸비디오 카메라 사용은 마비카와 같은 제품의 실용성을 확인 시켜 주었습니다.


Mavica

 

이후 1989년에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을 AP통신의 Ron Edmond기자가 Nikon 스틸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해 취재한 후, 현장에서 휴대용 전송기를 이용해 전송함으로써 2분 만에 각 언론사의 전자암실(Electronic Darkroom) 모니터로 전송되었읍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단축된 25분은 미국의 석간신문에 인쇄가 가능 하느냐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시간 차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신문 시스템은 급속하게 변화했고, 전자암실 시스템이 일반 암실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캠

다이캠은 비록 흑백 사진에 불과하고 1MB의 메모리에 32장을 저장할 수 있지만 376*240의 해상도를 가진 CCD를 이용해 괜찮은 화질을 제공한, 제대로 된 디지털카메라로. '다이캠 모델1'의 경우 화상을 메모리에 TIFF 형식으로 저장하며, 즉시 PC로 전송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누가 빨리 찍고 더 정확하게 전송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었기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아쉬운 점들을, 필요한 점들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점차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좋은 디지털 카메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