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엘 그레코의 화실 - 톨레도
91 엘 그레코의 화실 - 톨레도
고원지대, 평평한 땅을 가다 느닷없이 솟은 언덕 위에, 2천년 세월 속에 이곳을 점령하였던 로마인,서고트인, 무어인들과 이들의 종교인 이슬람, 유대교, 가톨릭까지의 다양한 문화가 섞여 찬란하게 빛나는 고도 톨레도 구시가지가 솟아 있다.
동서남 세 방향으로 휘돌아 흐르는 "타호강" 남쪽 언덕, 뷰-포인트에서 강 건너로 바라본 "톨레도 파노라마" 모습 이다.
이 강이 서쪽 멀리 포르트갈 리스본 하구까지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데, 포르투갈에서는 "테주"라고 부른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톨레도는 삼면을 강이 막아주는 언덕 높은 곳에 자리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였다.
구시가지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사각형으로 첩탑이 보이는 것이 톨레도 궁전이다.
정면 가운데 첨탑이 높이 솟은 곳이 스페인 가톨릭에서 으뜸가는 교회, 톨레도 대성당이고 왼쪽 지붕 뒤로 첨탑만 둘 보이는 곳이 톨레도 시청이다.
톨레도는 예부터 칼 만들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금속 다루는 솜씨가 좋았던지 로마시대부터 시작돼 이슬람과 가톨릭 시대을 거치면서 15~17세기 전성기에 이르도록 '톨레도의 검'을 유럽 최고의 칼로 쳤다. 칼 산업은 근대 무기의 발달로 스페인 내전 이후 쇠락해 이제는 이렇게 기념품 만드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지금도 기념품 가게마다 화려하게 치장된 칼들이 번쩍이며 유혹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엘 그레코 그림으로 만든 대형 현수막이 성 입구 한 쪽 벽면을 다 채울만큼 크게 펼쳐져 "톨레도의 엘 그레코"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중세 미술계의 거장 엘 그레코(1541~1614)는 그리스 그레타섬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10여년 활동할 때 사람들이 '그리스 인'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엘 그레코'라고 별명으로 부르던 것이 아예 "도메니코스 테오토코룰로스"라는 본명에 앞선 공식 이름이 되었는데, 그는 서른다섯 살에 톨레도에 정착해 40여년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다 톨레도에서 숨진 '톨레도의 화가'가 되었다. 허긴 본명보다도 "엘 그레코"가 훨씬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에도 편하다.
그림에서 중요한 원근법을 무시하고 인물들을 기형적으로 길게 묘사한 그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후원한 톨레도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는 역사 속에 묻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기 위하여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도록 톨레도를 관광의 도시로 만들어 주었으니 비록 그리스에서 태어 났더라도 스페인의 톨레도 화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토 토메성당"이 있다.
예수의 제자 중에 의심 많다고 소문이 난 도마가 인도에 까지 가서 선교를 하다가 순교를 하였는데 이 곳에도 그를 기리는 자그마한 성당이 있다.
그런데 이 작은 교회에 들어 가려는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그 긴 줄이 줄어 들 줄을 모른다. 입구 기둥에 '엘 엔티에로 델 콘데 데 오르가스(그레코)'라고 쓰여 있다.
엘 크레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들어서자마자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큰 벽에 그려져 있다.
오르가스 백작이 묻힌 소예배실에 바친 그림인 것이다.
산토 토메성당은 12세기에 세웠지만 지금 모습으로 새로 지은 것은 1312년 지역 자선가 오르가스 백작이 죽으면서 남긴 교회 확장 기금 덕분이었단다.
그래서 교구는 1586년 이곳 예배실에 백작의 시신을 안치하면서 이 교회에 다니던 엘 그레코에게 예배실 벽화를 의뢰하게 되었고 그 그림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그를 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만드는 것이다. 워낙이 유명세를 타는 그림인데다가 이 곳에 오지 않으면 볼 수가 없기에 막상 긴 기다림 끝에 안으로 들어 가 보아도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지, 사람은 많아 뒤에서 계속 밀기 때문에 거저 잠시 눈으로 보고 나와야 한다. 그 외에는 별 볼일이 없는 작은 성당이니까….
그래서 결국 그 그림의 사진도 빌려 올 수 밖에 없었다.(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용케도 사진을 찍어 나왔음을 간간히 보게 된다.)
오르가스백작은 생전에 선행을 베풀었던 사람이어서 그가 묻힐 때 하늘에서 성 오거스틴과 성 스테판이 내려와 매장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그 전설을 한 화면에 천상과 지상으로 나눠 묘사한 작품으로 윗부분에선 벌거벗은 백작의 영혼이 구름을 타고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한 천상세계로 가고 있다.
아랫부분에선 오른쪽에 모자 쓴 성 오거스틴과 왼쪽 붉고 노란 옷 입은 성 스테판이 허리를 구부린 채 공손하게 백작의 시신을 묻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왼쪽 아래 서서 관람자를 보는 소년은 엘 그레코의 여덟 살 아들 호르헤 마누엘(후에 톨레도 대성당 건축을 개축하여 오른쪽 돔을 만들게 된다.)이고 성 스테판 머리 뒤에 오른손을 들고서 역시 관객을 바라보는 이가 엘 그레코이고….
글쎄…. 왜 이 그림이 그렇게도 유명하여 졌을까?
그림에 얽힌 많은 뒷 이야기들 때문일까?
그 답은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이 외에도 많은 그림들이 톨레도 대성당에, 그리고 엘 그레코 박물관과 세계 도처의 미술관에 많이 걸려 있으니까!
톨레도는 오래된 도시답게 대부분이 골목길이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언덕길들이 전부 자갈 혹은 조각돌들로 포장이 되어 있어, 중세 때엔 편자를 박은 말들이 마차를 끌고서
또각또각 소리 내며 갔겠지만 요즈음에는 골목을 비집고 들어 오는 작은 차들과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여인네들의 하이힐 소리가 마치 그 옛날의 말발굽 소리처럼 들리도록 많은 여인네들이 골목마다 화려하게 전시된 많은 고급상점들을 바쁘게 들락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