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바이킹의 수도 - 오슬로 [Oslo] 시청
26 바이킹의 수도 - 오슬로 [Oslo] 시청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자체가 하나의 주를 이루며 노르웨이 남동쪽에 있는 오슬로 피요르드의 끝부분에 있다. 1300년경 하콘 5세가 아케르스후스 요새를 세웠으나 1624년 화재로 파괴된 뒤 덴마크-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 4세가 보다 서쪽의 아케르스후스 요새 성벽 아래에 신도시를 세워 "크리스티아니아"라고 부르며 시작된 도시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속령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3개국이 있지만 막상 스칸디나비아 3국을 말 할 때에는 핀란드가 빠지고 대신 덴마크가 들어간다. 이 세 나라는 모두가 뿌리가 비슷한 북방 게르만 족과 겔트족 그리고 스베야족인데 반하여 핀란드는 중앙아시아계의 핀족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때까지 노르웨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던 "베르겐"이라는 서쪽 해안 항구도시보다 커지게 되어 1925년 "하나님의 초원"이라는 의미의 "오슬로"라고 이름을 고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에는 주위의 도시인 아케르를 합병했고, 그후 수십 년 동안 많은 위성 도시와 주거지대가 오슬로로 편입되며 발전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한의 3배가 넘는 면적에 인구는 고작 520만명(2004년 추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난 자원부국으로 세계가 부러워 하는 복지제도를 가진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국토의 반이 북극권에 걸쳐 있어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현상이, 겨울에는 해가 한 낮에 잠깐만 뜨고마는, 밤이 긴 나라가 되어 황홀한 오로라를 마음껏 볼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오슬로 항구는 노르웨이의 무역·금융·산업·상업의 중심지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분주한 항구이다. 이 항구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오슬로 시청이 있으며 그 뒤로 국립극장, 노르웨이 극장, 신(新)오슬로 극장, 노르웨이 오페라 극장등 노르웨이의 주요 문화기관들이 있다.
좌우 대칭의 벽돌로 지어진 시청사는 1950년 오슬로시 창립 900주년을 맞이하여 완공되었는데 노벨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이 이곳에서 수여되기에 더욱 유명하여진 건물이다.매년 12월 10일 노벨이 서거한 날 노벨평화상이 수상되는데,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도 2000년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바이킹 하면 흔히 해적을 연상하지만 노르웨이에는 의외로 많은 인물들이 있다. 남극을 최초로 탐험한 아문젠이 있는가 하면, 문학으로는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으로 여성해방의 기치를 든 "헨릭 입센"이 있고, 음악으로는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페르귄트"의 작곡자 "에드워드 그리그"가 있다. 그리고 화단에는 2012년에 "절규"라는 그림 한장을 당시 무려 1억 1천 999만 2,500달러에 팔어 역대 최고 낙찰가를 올린 표현주의의 거장 "에드바르드 뭉크"가 있다. 그가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따낸 프로젝트로 오슬로 대학교 강당을 장식한 벽화로 인하여 1916년 개관한 이래 가장 유명한 대학 강당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노르웨이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꼽혀오고 있다.
이렇듯 문학과 음악과 미술이 함께 어울려 있는 오슬로는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요르드"의 관문이기도 하다.
오슬로 시청사. 시내에서 바다쪽으로 본 정문이다.
시청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홀이 나오는데 이곳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곳이다.
사방의 벽에는 노르웨이의 일상 생활과 문화를 담은 거대한 유화들이 걸려 있다.
시청과 항구 사이의 광장, 어린이들이 견학을 왔나보다. 이 곳에서는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기 시작하는 것 같으다. 이민을 잘 안 받는데도 계속 늘어나는 "어떤 종족"(전 유럽이 골치를 앓고 있다.)들에 대한 불안감인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에서 본 시청
시청에서 바라보는 오슬로 항구. 이 곳은 주로 관관용이고 산업항은 조금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