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chunchunhi 2013. 10. 27. 02:28

19 성 이삭 성당

 

표트르 대제 시대에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최초의 성 이삭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 뒤 1717년에 원로원 광장(현재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이전했지만 연약한 지반 탓에 낙뢰로 소실되었다.

성당 건축에 무슨 저의가 숨겨져 있었나…? 성당에 번개가 내리다니…

그 후 예카테리나 대제의 칙명에 따라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안토니오 리날디의 감독 아래 재건 사업에 들어갔지만, 미완성으로 끝나고, 파벨 1세가 그녀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시 재건에 참여했으나 완성을 못 보다가 알렉산드르 1세 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프랑스 출신 궁정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의 설계에 따른 것이다.  몽페랑은  1818년부터 1858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붕의 돔이 러시아정교회의 양식과는 다르게 유럽풍이 되었나보다.

사면의 벽 앞의 박공[牔栱]에는 유명한 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각기 다른 내용들이 청동으로 부조되어 있고, 이를 붉은 화강암의 굵은 원주들이 받치고 있다.

네바강 쪽에서 바라보는 북쪽 박공의 주제는 조각가 ‘레 무아’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동쪽 박공의 주제는 발렌스 황제를 멈춰 서게 하는 성 이삭이다.

서쪽 박공의 주제는 비잔티움 황제 테오도시우스에게 축복하는 성 이삭이다.  바로 이 성당 주인 이름이다. 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믿음의 조상의 아들’이지 그리스정교나 동방정교, 혹은 카돌릭에서 말하는 성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 이삭은 ‘이삭 달마시안’이라고도 불리우는 지중해 북동쪽의 작은 나라 달마시아의 성인인 것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그 먼 곳의 성인의 이름을 이 성당에다가 가져다 붙였을까? 

성 이삭의 축일이 5월 30일이었는데 바로 그 날이 표트르 대제의 생일이기 때문이란다. 표면적으로는 정교 성인을 위한 성당을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지었지만 그 저의에는 그 당시 막강한 권력의 정점에 있던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새로 건축된 성당의 정문 앞 넓은 광장에는 표트르대제의 기마상이 성당을 마주 보며 세워져 있다. 이후에도 권좌에 오른 황제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 이삭 성당을 증축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 이삭 성당은 4번에 걸쳐 확장, 재건축되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건축, 공학, 미술, 장식 등의 예술작품과 관련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후세에 문화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른 건물들처럼 소실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폭격은 피할 수가 있었다.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는 성 이삭 성당의 황금 돔(황금 100톤을 사용하였다고 한다.)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독일군에게 표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측은 성당의 돔을 회색으로 덧칠하였다. 과연 그렇다고 그 큰 성당이 폭격기의 눈에 띄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곳의 군 사령관도 불란서 침공을 지휘한 군 사령관처럼 종교적인, 예술적인 건물의 파괴를 피하고 싶어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소련 정권 아래에서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가 소련 정권이 붕괴한 후에는 다시 종교 건물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이 성당 남쪽에서있다.

 

 

 

 

화려한 사원의 내부

 

 

돔 안의 천정화

 

 

남쪽 박공과 그를 받히고 있는 붉은 화강암 원주.핀란드에서 가져온 돌들로 기둥 하나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 졌다.
박공의 주제는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이다. 조각가 비탈리의 작품이다. 중앙에 동방박사들로 둘러싸인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있다.
박공 왼쪽에는 사도 안드레가 서 있다(안드레는 러시아까지 와서 전도했다고 여겨지며,
대각선 모양의 십자가에서 순교함. 러시아 해군기가 대각선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음.).
오른쪽에는 사도 빌립이 있다. 상부에는 사도 마태가 서있다.

북쪽 박공의 주제는 조각가 ‘레 무아’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삭성당과 네바강 사이의 원로원광장에 서 있는 청동기마상.
쿠테타로 남편을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오른 독일출신,예카테리나2세가 표트르대제의 후계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1782년 프랑스의 조각가 파르콘에게 만들게 한 기마상.
결국 표트르대제가 성당의 남쪽과 예카테리나2세가 북쪽을  수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전 유럽에서도 찿아 볼 수 없는 앞 다리가 번쩍 들리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