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북 유럽 여행기

8 우주 경쟁- “지구는 푸른빛이다.”

천천히 chunchunhi 2013. 8. 14. 11:05

8 우주 경쟁- “지구는 푸른빛이다.”

NEX 6  1/200 f:9 iso 200

코스모스 호텔 정문을 나서면 보이는 높이 솟은 두개의 조형물.
하나는 모스코바 통신탑이고 또 하나는 인류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을 기념해서 세운 탑이다.

 “지구는 푸른빛이다
인류 최초로 우주에 나간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1934 3 9 - 1968 3 27)이 지구를 본 뒤 한 유명한 말이다. 그는 1961 4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인 우주시대의 서막이 열렸고, 지구라는 한정된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7년 후인 1968 3 27, 비행 훈련 중 타고 있던 제트 훈련기가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 주의 한 마을에 추락해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34세였다.

끔찍하고 참혹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승전국이 된 미국과 소련은 일본과 나치가 점령하였던 여러 나라들을 자신들의 영향력아래 독립도 시키면서 서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눈에 불을 켜고 다투게 되었다,  지구상에서의 다툼이 거의 정착이 되자 이네들의 욕망은 무한한 공간인 우주로 향하게 되고, 그 첫 기선을 소련이 잡게 된 것이다. 미국도 이에 질쎄라엄청난 재력과 기술을 동원하여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이제는 화성에까지 탐사선을 내려 놓게 되었지만 아직도 계속 확장되고 있는 유인 우주정거장은 결국 소련과 미국의 독무대가 되었다.

100년을 채 못사는 유한한 인간들이 비록 초 강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몇 억광년의 그 끝을 모르게 넓은  무한한 우주를 어떻게 나누어 가지려는지…?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선 안에 앉아 카운트다운을 기다릴 때의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인도를 찿아가서 많은 재화를 싣고 돌아 와 부귀를 꿈꾸던 콜럼버스가 마침내 카스티야(지금의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이라는 물주를 만나 미지의 세계을 향해 돛을 올려 출항하던 그런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콜럼버스의 의욕과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초조, 그리고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자기 보다는 먼저 개와 원숭이로 실험을 해서 생환이 입증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는 처음 올라가 보는 우주가 아닌가!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어두운 공간인 우주에서 바라 보는 지구!  태양빛을 받아서 파랗게 빛나는 그 지구!

몇시간 전까지도 자신이 발로 밟고 서 있던 그 지구가 지금은 파랗게 빛나며 어둠 저쪽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을 때의 감흥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돌아 와 영웅적인 환영을 받는 순간까지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요즈음에야 자비로 우주 여행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섯다지만 그건 여러번의 귀환을 성공 시킨 후인 요즈음이 아닌가 말이다.

결국은 그 몇시간 동안의 극심한 공포와 초조와 불안이 그가 귀환하여 발 붙이고 사는 "더 이상은 파란빛이 아닌 지구"에서의 여생을 그리 평탄하게 만들 수가 없었던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환으로 소련이라는 나라는 그 후 이렇게 높이 96m의 거대한 기념탑을 쌓아 나라의 힘을 후세에 과시하며 또 다른 꿈을 많은 젊은이에게 심어 주려 하지만 일찍 요절한 가가린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늘 높이 비상하는 기념탑을 보며 나의 저~~~밑에 거의 망각되어가고 있던 "가가린"이란 이름을 기억의 이편으로 끌어 올리게 하기는 하였다만 나는 이제 곧 여기를 떠날 터인데.... 그리고 "가가린"  또 다시 나의 기억의 저 편으로 침잠하여가겠지?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두려움과 불안, 초조, 때에 따라서는 확신에 찬 모험을 하는 극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어가며 그 지평을 여는 것이리라. 이 기념탑을 보는 오늘의 어린 사람들이 언제인가에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하여 도전하는 날이 오겠지.

 

우주복 속의 가가린

 

탑 아래 부조된  우주선을 발사대로 옮기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