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모스코바에 웬 드골 동상?
7 모스코바에 웬 드골 동상?
NEX6 1/200 f:6.3 iso 200 18mm
우리 나라= 좋은 나라.
나쁜 나라= 소련, 북한
이것이 벌써 50년도 전에 내가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통해 배운 공식이었다. 그 후 반세기가 넘도록 세상이 많이 변하였음을 몸으로 느끼며 지내어 온 시간들이었지만 막상 모스코바의 코스모스 호텔 앞에 우뚝 서 있는 촬스 드골의 동상을 볼 때 순간적으로 이는 의아심은 곧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불란서는 우리나라편인데…. 드골은 불란서 대통령이었는데…. 왜 적국이었던 드골의 동상일까?
오랜 비행 후에 모스코바의 호텔에 짐을 푼 후, 백야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어 아직도 훤한 정원을 거닐며 지는 석양에 반짝이는 커다란 동상을 보고 으례 “스타린이나 레닌의 동상이겠지” 하던 나의 생각은 여행 첫날부터 산산히 부서지고 만 것이다.그 동상의 받침대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말이다.
다음날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으나 시원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여행 내내, 새로움을 볼 때마다 경탄 하면서도 뇌리 한 구석에 찌프등하게 남아 있던 의문을 풀기 위해 집으로 온 후 여기 저기를 뒤지던 중에 “二八中死”라는 어느 노 병사의 칼럼에서 답을 얻을 수가 있었다.
내용인즉은 2차세계대전 중에 불란서는 나치의 침공으로 완전히 무너 졌지만,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장군은 불란서의 전투비행 조정사들을 설득하여 러시아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우게 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그 유명한 노르망디항공대인 것이다. 이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또 계절이라는 기후조건의 도움도 있었기에 히틀러도 결국은 모스코바를 눈 앞에 두고도 철수를 할 수 밖에 었었던 것이다. 전 후에 이들의 활약상이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지만 불란서군인들의 러시아 영토 안에서 나치와 싸우던 일들은 그리 잘 알려진 전사(戰史)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 후,요셉 스탈린은 비행대의 명칭을 노르망디-네멘(Normandie-Niemen) 비행대로 명명 하였다. 네멘 강은 당시 영웅적인 승리의 상징이었고, 네멘이란 이름이 부대에 부여된 것은 노르망디 비행대가 두 번째였다. 12월에 비행대원들은 특별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서 드골 장군을 만났고, 거기서 프랑스와 소련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모스크바에서 소련 조종사들과 함께 드골에게 훈장을 받는 노르망디 항공대 조종사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승전국이 되어 미국과 더불어 막강한 위세를 떨치며 나치와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던 나라들을 나누어 가지면서 시작된 냉전은 결국 한반도에서는 6.25를 불러 왔고, 그 이후로도 동.서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크고 작은 많은 전쟁으로 서로 부딪치게 되었지만 미국편에 선 프랑스와의 관계는 그리 나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허긴 어제의 적이 오늘에는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에는 다시 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정치세계의 무상함이 아닌가! (이는 비단 정치세계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사에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정치세계의 무상함이 결국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1980년 모스코바 올림픽을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올림픽을 위해 지어 진 커다란 호텔 코스모스, 그 바로 중앙에 드골의 동상을 이렇게도 크게 세워 놓을 수가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요즈음도 많은 관광객들이 여장을 푸는 25층 건물에 객실이 1,777개나 되는 이 호텔은 1979년 프랑스 건축가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모스코바에는 요즈음도 호텔이 태부족이다. 그래서 모스코바 여행경비가 비싸진다고 한다.)
PS: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 보다도 여행지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저의 취향과, 또 제가 처하였던 상황에서 찍혀진 사진들로 현지의 이야기와 함께 이곳 저 곳을 다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