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교회, 그리고 나

2008-09-14 헤어 질때 하는 말

천천히 chunchunhi 2012. 5. 31. 06:16

헤어 질때 하는         2008 9 14 새벽기도

 

[개역]행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개역]행 20: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개역]행 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개역]행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개역]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개역]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개역]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개역]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개역]행 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개역]행 20:26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개역]행 20: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개역]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개역]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개역]행 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개역]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개역]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개역]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개역]행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개역]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개역]행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개역]행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개역]행 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지난번 아침 에는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을 가지고,사도 바울이 빌립보 밖에서 루디아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만남에는 육체적인 만남이 있고, 영적인 만남이 있으며 감정적인 만남이  있음을 함께 생각해 보았었읍니다.

 

아직 목사님이 안계시기에 이렇게 장로들이 돌아가며 새벽 예배를인도하다 보니 차례가 되었고,그래서 이번 주간의 광야의 만나를 드려다 보니 마침 거기에는 헤어 하는 말들로 사도행전 20장이 끝이 나더군요.

그래서 오늘아침은 헤어질 하는 이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만남의 연속인것과 마찬가지로 만남에는   따르는 헤어짐이 있게 마련입니다.

육체적으로 잠시 헤어지는 헤어 짐이 있는가 하면 우리를 영원히 갈라 놓는 죽음으로 헤어지는 헤어짐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지름길을 좋와 합니다.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빨리 있는 길이 아니겠어요?

무엇이던지 빨리 하는 것을 좋와하고, 빨리 성취하는 것을 좋와하는 우리 인생인데 한가지, 삶에 있어서 지름길을 좋와하는 사람을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읍니다.

세상 보다 좋다는 천국에 가는 일인데도 말이예요.

입으로는 , 말로는 빨리 죽어야지하면서도 막상 이면에는 조금더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름길로 가던, 천천히 돌아서 가던, 우리는 모두가 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인생여정이지요.

여정의 종착역에서 하는 말은 우리는 유언이라고 합니다..

 

말에... 새가 죽을 때가 되면 목소리가 유난히 슬퍼지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말이 선해 진다... 하였읍니다.

아마도 때문에 우리는 유언을 신중하게, 엄숙하게 받아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유언,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십니까?

오는 , 요란스레 울어대는 청개구리 엄마의 유언인가요?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연상하실 지도 모르겠읍니다.

죽음 직전에 자신을 찿아온 친구들에게 자기가 생전에 아무개에게 한마리를 진게 있는데 그걸 갚아 달라는 말을 하여서 유명하여 졌지요.

 

지난 성지 순례시 그리스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감옥 앞에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런게 아니라고도 하지만 워낙이 유명한 일화니까요.

유명한 철학자가 운명직전에는 어떤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 깃든 말을 알았는데 세상에 별로 값어치도 없는 한마리를 갚아 달라니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의외라고 생각을 하였겠지요.

그래서 요즈음도 유언 하면 일화를 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런데 일화에도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읍니다.

그는 철학자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살아 생전에 빚진 한마리를 갚아 달라고 해서 정리를 하고 운명을 하였는데 빚을 갚아 사람에게 빚은 그가 죽은 후에 어떻게 갚으려는지 이게 저에게는 도저히 답이 주어지지가 않읍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죽는 형상이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시는 지요….?

 

성경에서 우리가 인용하는 유언으로는 열왕기 2 1절에서부터 12절에 이르기가지 기술 다윗의 유언이 있읍니다.

정말로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 다윗, 많은 시편을 기록한  믿음의 시인 다윗이 전체를 통하여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아들에게 전수하여 주는 장면입니다.

왕상 2:1-12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개역]왕상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개역]왕상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개역]왕상 2: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개역]왕상 2: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개역]왕상 2: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개역]왕상 2: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개역]왕상 2: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개역]왕상 2: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개역]왕상 2: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 성에 장사되니

[개역]왕상 2: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개역]왕상 2: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이렇게 다윗은 솔로몬 왕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하여야 일들과  백성들을 통치하는  원리를 가르치고, 원리를 실현하는 장애가 만한 사람을 처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가 생전에 받은 은혜를 갚아 달라고 부탁하고 죽으면서 원수를 부탁한 셈이지요.

믿음의 사람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유언의 본보기라고 수가 있겠읍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사도행전 20 17절에서 35절까지는 바울의 유언이었읍니다.

물론 바울이 말을 마치고 바로 죽지는 않았읍니다마는 3년간의 에베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때에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여로인 것을 그는 성령의 도움으로 있었던 같읍니다.

그래서 37절과 38절에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기록하며 20장을 마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송받으며 떠난 것이 그의  3 여행이 되었고 3 여행은 그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전도여행이 되어 결국 로마의 외에서  참수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요.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나서 마지막 부탁을 하는  바울의 심정은 참으로 숙연하였을 것입니다.

 

1,2 전도여행을 마치고 에베소를 방문하여

3년이라는 세월동안  열심히 예수님을 전도하고, 하늘나라를 전파하여 믿는 사람들을 많이 심어 놓기는 하였지만 자신은 도시로부터 축출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0 까지에 흐르는 내용들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만큼, 악한 또한 역사를 같읍니다.

아니 하나님의 보다도 크게 역사 같읍니다.

지난 봄에 우리 성지 순례팀이 모여 합창을 에베소 극장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에베소의 아데미여 하루 종일 외치면서 사도 바울을 죽이라고 송사를 하였지만 극적으로 놓여나서 에베소를 떠나게 되는 장면이 20장의 시작이 아님니까?

육체적인 위험에서 겨우 놓여 났지만 그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그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수가 있었읍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하는 것이 오늘 읽은 본문인 것입니다.

 

그의 지나 삶을 진솔하게 말하면서 그네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처럼 바울은 자신이 일들을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 있도록 열심히, 깨끗하게 아온 사람이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유언을 수가 있었던 같읍니다.

 

[개역]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개역]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개역]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개역]행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개역]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오늘 아침에 함께 우리도 이제 머지않은 종착역을 바라보고 있음을 부인할 없을 진대, 지금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말을 수가 있을까요? 나는 과연 어떤 유언을 남길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말을 듣는 사람들은 나의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생각해보는 아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아직 종착역에 닿지를 않았으니까요.

지나 삶이 어떠하였던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 우리는 얼마던지 바뀔 수가 있고,

회개할 수가 있고, 그래서 거듭날 수가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지나온 날들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시는 우리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주와 그의 은혜의 말씀을 부탁할 있는 중보의 기도자들이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떠남을 아쉬워하고, 안타가워 하면 서로 울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출 있는 사랑받는 우리가 되어지기를 기도 드립니다.

 

그러할 바울의 삶이 비록 순교를 당하였다 하더라도 승리한 삶인것 처럼 우리의 또한 승리하는 삶이 되어서 주님 품에서 다시 만나 영락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