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이스라엘 여행기

순례기 18 마지막 회 여리고 그리고 유대 광야

천천히 chunchunhi 2010. 9. 16. 22:37

 순례기 18 마지막    여리고 그리고 유대 광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중에 있는 유대 광야

 우기가 지나면 이렇게 몇포기 풀들이 자라지만 금방 말라버리던지.... 아니면 양들의 먹이가 된다.

 이 광야에서 40일간의 기도 후에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사람들의 느낌으로는 오랜 금식 후에 보이는 모습이 그 당시 유대나라의 빵처럼 보였을것이라나....

 

 

 발굴 중인 여리소 성터

 

 

 

 여리고 성 앞에 있는 삭개오나무 수령이 2000년이 넘었단다. 허허, 믿어야지.

 

 

(여리고를 먼저 보고 유대광야로 나왔지만 글의 흐름을 위해서 순서를 바꾸었읍니다. 함께 하셨던 분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이스라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자동차로 40분이면 여리고에 도착하지만 해발 820m의 예루살렘에서 해저 395m 밑에 있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인 여리고까지의 길은 그저 언덕을 끝없이 내려간다.
돌고 돌아 내려가노라면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온도의 차이를 먼저 느낄 수 있고, 차창 밖에는 갈수록 점점 황량한 유다광야로 변해간다.
우기에는 군데 군데 풀이 자라지만, 일단 건기에 접어들면 황량한 모래빛 언덕이 겹쳐 보일뿐이다. 지금 우린 다행이 우기가 막 지난 시점에 이곳을 지나기에 군데 군데 퍼런 풀들을 볼 수가 있고, 길가의 곳곳에 베두인 천막이 보이고, 또 그 풀을 뜯는 양의 무리 또한 심심챦게 볼 수가 있었다.

광야를 통해서 걸어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또 그 시간 때문에 우리는 차를 타고 내려 가다 그 광야가 잘 보이는 곳에 내려서 조망을 감상하곤 각자가 흩어져 소위 광야의 기도들을 하였다.
오랫만에 부인의 손을 꼬옥 쥐고 하는 기도. 왜 또 눈물이 나는지….
언제 내게서 이 눈물을 거두어 주시려는지….
울보 할아버지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보는 사람은 내 흉을 덮어 줄 부인밖엔 없으니 좀 안심이 되나보다.
때마침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보이는 그 광야의 정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경이로운 정경!  하나님의 창조였다.

저 아래 멀리 골짜기를 따라서 펼쳐진 구비길. 그 한 자락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이 있었단다. 지금은 그 여관터라는 자리에 베드윈이 천막을 치고는 기념품과 음료를  판다고 하는데…. 가 보지는 못한 채 이야기로 족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예수님은 비유를 하시면서도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개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던 사마리아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격상시켜 놓으셨을까?

왜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돌아 가시며 그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시었을까?
"?"라는 답은 아마도 한 평생 찿아 다녀야 할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설마 예수님께서 그 때 벌써, 요즈음의 개들이 저희들끼리 욕을 할 때 "사람 같은 놈"이라고 한다던데 그걸 알으셨을까… ?

사마리아 지방은 아직도 들어 갈 수가 없어 버스를 뒤로 돌려 여리고 성을 찿았다.

여호수와가 칼 한번 안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부셔 트린 성, 여리고, 그 자취를 둘러 보며 빙긋이 웃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날 어린아이를 붙잡고 물어 보셨다.
"애야, 너 참 똑똑하게 생겼구나너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 뜨렸는지 아니?"
그랬더니 그 아이가 울쌍을 지으며 "목사님, 전 아니예요. 내가 안부셨어요."하더란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주일학교 선생님을 붙잡고 말씀 하셨단다.
"ㅁㅁ집사님, ㅇㅇ에게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는지 아냐고 물어 보니까 자기는 아니라며 모른다고 하던데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 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ㅇㅇ는 참 정직한 아이입니다. 지가 않했다면 분명히 하지 않았을 겁니다." 라고 답하더라나….ㅎㅎㅎ
어느 목사님의 예화, 그 본거지에 와서 부서진 성터를 바라보았다.

정말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 트렸을까?
7바퀴를 돌라고 하셨을까?
왜 나팔을 불며 소리를 치라고 하셨을까?
영원한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선 또 영원한 삶이 필요한 우리 인간인가 보다.
알아야 고만 고만이고, 몰라도 고만 고만인 우리 인간의 한계.
살아 있는 동안, 앞날을 예견한다면서도, 한 구비 너머 무엇이 있는 줄 모르는 우리가 어찌 누구 하나 죽어 본 경험이 없이, 거저 죽고 마는 그 죽음 뒤를 알리요.

사는 것이 두려워서 사회을 만들었고, 죽는 것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는 그 말이 참 공감이 갔지만, 그 살기 위해서 만든 그 성도 이렇게 페허가 되고 마는 것을 보면 그 사는 게 과연 무었일까?
죽음이 두려워서 만든 종교!
그 두려움도 가지 각색이어서 종교의 종류도 그렇게 다양한가보다.
허나 한가지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던, 일단 그 믿는 대상을 정하였으면 그것에 심혈을 기우려야 되지 않을까?
이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 신에 기웃거리고, 그러다가는 또 다른 신을 드려다 보고….
이건 믿음이 아닌것 같다. 허나 믿음을 어찌 나의 잣대로 잴 수 있으리요.
그 믿음에 의지하는 죽음은 부부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서로 대신 할 수가 없는 것을….
성지 순례의 마지막 기착지인 여리고 성터의 그 폐허 위에서 잠시 숙연해 진다.
이제 성지 순례가 아니라 인생순례도 종착에 가까워 오는 데…..
나는 어떤 페허를 남기려는가….
그래도 여리고는 오늘까지 그 차취를 남겨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일단은 돌아가자.
일터가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귀엽게 웃는 손자 손녀가 있고, 그리고 주일이면 웃으며 만나는 얼굴들이 있는 나의 여리고,나의 집으로 말이다.
인생 일장 춘몽이 깨기 전에……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나의 삶이 있던 나의 여리고 또한 "말씀"보다도 약한 "소리"에 무너지는 "여리고 성" 처럼 무너지겠지만….
허나 그 때 까지는 열심히 살아 보자!
나의 삶 또한  폐허가 되어 자녀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테니까
이왕이면 아름다운 폐허가 되면 좋겠지.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버스에 올랐다.

순례를 마치고
19명이 일사 분란하게, 질서 정연히 움직이며 그 먼길을 다녀 오도록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의 땅들을 돌아다니던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을 것으로 믿어 집니다.
모두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힘들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채, 단체로서 움직일 수가 있었으니까요.
우리를 인도하신 김 태일목사님과 조장으로 수고하신 조장로님, 그리고 함께 움직여 준 우리 모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며 박수를 쳐 드립니다.
일사분란한 움직임, 그 속에 배어 있는 구도를 위한 경건함은 피곤을 몰아 내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요.
참으로 귀한 시간들이었읍니다.
말로만 듣던 곳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그리고 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체험의 시간들이었읍니다.
때로는 놀랍기도 하였고, 때로는 흥분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분노가 일기도 하였던, 희노애락을 다 경험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으니까요.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되돌아 보는 느낌은 또 새로울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환경에 따라 변할 테니까요.
훗날 이 글을 다시 읽어 볼 때, 그때의 나는 또 어떻게 생각하는 나로 바뀌일까를 생각하며 비교하여 보기 위한 방편으로 이번 여행길에 있었던 일들을 나의 생각을 바탕으로 적어 보았읍니다.
남의 글귀도 가끔은 인용하였고, 건방지게 성경구절도 여기 저기 달아 놓으면서 내가 느낀 그 감정을 전달하려 노력을 하였읍니다.
여러분들이 성원을 보내시며 읽어 주셨지만 이건 나의 느낌들이었기에 때로는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으리라 사료 됩니다.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