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동 유럽 여행기

프라하 4 성 비투수 성당

천천히 chunchunhi 2010. 7. 17. 01:27

 

  성 비투스 대성당 (Katedrála svatého Víta)

(체코의 수도 프라하대주교좌로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뛰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의 정면 모습.  너무 커서 사진 한장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

 

1989성 비투스, 성 바츨라프, 성 보이톄흐 대성당 (Katedrála svatého Víta, Václava a Vojtěcha)으로 개명하였다.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

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였다. 그가 1352년 숨을 거두자 당시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었고, 이후 파를러의 아들과 또 다른 건축가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갔다.

공사는 후스(Jan Hus)의 종교개혁 때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완공되고, 17세기에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17531775년 사이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60m, 천장 높이 33m, 첨탑 높이 100m에 이른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알폰스 무하의 작품)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라는 스테인드 그라스가 위엄을 더 해 주는 성당 안쪽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제작한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이다.  다른 벽에 있는 스테인드 그라스와는 그 기법이 다른 아주 름다운 색감의 스테인 그라스다.

그 조각 하나 하나가 붓으로 칠 한 것이 아니라 유리 자체의 빛을 깍아서 조립한 그 큰 성화. 이를 이루고자 하는 예술가의 혼과 믿음의 정열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여주니 예술의 힘, 믿음의 힘의 대단한 그 끝은 과연 언제까지, 어디에로 이어지는 것일까?

 

아름다운 채색유리에 취하고,  33미터에 이르도록 높은 천정에 압도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성당의 제일 안쪽인 앞의 커다란 스테인 그라스 밑에 오게 되었다.

 

 (성당의 정면에 있는 초대형 채색유리 성화)

 

누구의 작품이라는 이름은 모르지만(분명 누구인가 있을 것이다. 전하여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가이드가 모르던지…)  또하나의 아름다운 대형 채색 유리 성화가 밝게 비춰 온다.

아마 이제는 날이 개여오는 모양이다. 들어 올 때까지만 해도 찌푸둥 했었는데….

 

그 오른 쪽에 화려한 은으로 만든 조각들과 관이 놓여저 있었다.

바로  프라하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얀 네포무츠의 관이다.

 

그 옆에는 얀 네포무츠을 심문하는 바츨라프 4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심문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성화와는 거리가 머~~ㄴ)

 (순 은으로 만든 관과 조각들.)

(얼마나 정교한지...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썩어 말라버린 육체가 있겠지....?) 

 

그 상황이란 바로 이런 이야기인 것이다.

얀 네포무츠는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신부로 재직하던중 고해성사를 통하여 왕비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아내의 비밀을 국가 안위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한 바츨라프 4세가 얀 네포무츠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통해 알게된 왕비의 비밀을 공개할 것을 강요하며 고문하였으나 끝까지 비밀을 지켜내었단다.(글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짜 국가의 안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외도한 남자를 찿기 위해서 였을까? 사람 마음을 어디 알 수가 있어야지.허허허.) 
이에 격분한 바츨라프는 얀 네포무츠신부의 혀를 자르고 죽인 후 블타바강에 그 육체를 던져 버렸는데 그 시신이 강물에 닿자 곧 영롱한 별 다섯이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 났다고 전한단다.

이제 내일 카를다리에 가면 이 신부의 동상을 또 다시 보게 되된다니 그 때 다시 보아야겠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체코 왕들의 석관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본당 주위에는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화려한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의 벽면은 보석과 도금으로 장식되었고, 여러 성인들과 성서 속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성당 안 )

 

 

 또 다른 채색 유리 성화

 

 

 광장 쪽에서 바라 본 측면  금색으로 빛나는 곳이 진짜 금으로 그 안에는 많은 보물들이 아직까지 보관되어 있단다. 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배심원들이 있어야 한단다.)

 (성당 안에서 보이는 정면을 밖에서 본 모습.  엄청 많은 첩탑들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다.)

 

 

 

 (성당의 외벽 구석 구석에서 악귀의 범접을 금하기 위해서 더 악한 기를 뿜고 있는 괴물들. 비가 올 때에는 이 입을 통해 빗물이 뿌려지기도 한다.)

 

  

어둑컴컴한 성당 안이기에 사진을 찍기가 용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쉴 새 없이 셧터를 눌러대다 보니 어라, 일행들이 없는게 아닌가!  이런 낭패가…….

 

 작년에 중국의 이화원에서 부인을 잃어버려 혼이 났던 기억이 와락 되 살아 나면서 흐르는 식은 땀!

 

정신없이 뛰어 나가 주위를 보았건만 보이느니 모를 사람들 뿐이 아닌가?

왔던 길을 생각하며 내려 갔음직한 길로 한참을 가도 안보인다.

에라, 이럴 때에는 잃어 버린 곳에서 기다려야지! 하며 다시 성당 앞으로 뛰어오니 다른 한국 팀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혹시 가이드끼리는 연락이 될까 해서 물어 보려는데….. 저기서  Choi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 안도의 한숨!

실인즉은 내가 사진을 찍노라 늦은 줄 알았는데 일행들은 다른 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던 것을 내가 놓치고 지나 왔던 것이 아닌가! 저런 변이 있나!

공연히 다리품만 팔고, 또 식은 땀까지 흘리지 않았었나 말이다.

그래도 빨리 합류해 질 수 있게 하여 주셨기에 감사의 마음을 올려 보내드렸지.

 

 

(성 비투수 성당을 나와 내려사는 길 목에서.... 집집마다, 구석 구석마다 조각들이 즐비하다.)

 

(케플러의 법칙을 배운게 45년 전인데.... 그 때에는 그가 어느나라사람이라는 걸 몰랐었는데... 체코사람이었나보다.ㅎㅎㅎ)

 

장엄함에 눌린 채 정신없이 보며 사진찍으며 돌아 나온 성당을 뒤로한 채 계속되어지는 언덕길을 내려와 한구비 도니 또 나타나는 넓은 광장과 웅장한 조각상, 그리고 높이 솟은 성당과 종탑. 바로 구시가지의 중안에 위치한 일명 종교개혁 광장이다.

 

구리 녹이 슬어 파랗게 변색이 된 커더란 동상이 바로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