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터키 여행기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 2차 순례기 14

천천히 chunchunhi 2008. 11. 30. 07:40

 

히에라 폴리스 안의 원형극장 

 극장 입구

 도시로 흐르는 수로

 목화의 성이라고 불리우는 온천이 남기고 간 자취

 목화의 성 앞에선 녀자들..... 물레를 돌려야 하는데.....

 온천이 만든 독탕. 그런데 아무도 못 들어 간다 지금은....

 흐르는 온천에 발을 담그고

 

온천이 흐르고 간 자리

 

2차 순례기 14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

아직 발굴이 다 안되어서 볼 것이 얼마 없는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나와 히에라폴리스로 향하였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거룩한 도시라는 히에라 폴리스.

토론토에서 요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모으다 보니 제일 혼동되는 것이 이 지방 지명이었다.

어떤 책에는 파묵칼레라는 설명에 나오는 사진이, 또 다른 곳에서는 히에라볼리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케말에게 물어보니 히에라볼리는 원래 히에라폴리스를 말하는 것으로  요즈음에는 파묵칼레라고 불리우는 도시 안에 있던 옛날 도시라고 한다.

요즈음도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는 곳으로 이 유적지 안에  온천수로 인하여 하얗게 된 바위산이 있단다.

이 바위가 멀리서 보면 하얀 목화송이가 뭉쳐 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파묵칼레라고 비쟌틴 시대부터 불리우게 되었단다.

그럼 좀 정리가 되었나…?

내가 만들었던 책자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애매하였었으니까 말이다.

 

, 그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 안으로 들어 왔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벗고 돌아다닌다.

따가운 한 낯의 태양이 내려 쬐이고, 또 그 것이 눈처럼 하얀 바위에 반사되어 밑에서부터 올려 쬐이니 우리는 마치 태양의 한 가운데 들어선 기분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 일행 중에는 웃통을 벗어 제키는 상스러운(?) 사람이 하나도 없이, 거저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어들고 그 하얀 바위 위로 올라갔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구를 막론하고 신발을 벗어야만 한단다.

당뇨가 있어 발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예외가 없단다.

조심해서 걷던지, 아님 들어가지 말던지….

허허, 참 뱃장이로고….

그렇다고 안들어 갈 수야 있는가…..

Better Half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손잡고 들어서는 발 바닥이 따끔따끔이다.

어쩜 이런 따끔거림이 발바닥을 잘 마사지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들어 서면서 보는 경관은 절로 탄성이 나게 만든다.

아침에는 저~~~ 밑에서 올려다 보며 탄성을 질렀는데 지금은 저~~~밑을 내려다 보면서 탄성을 지르고….

참 사람 팔자 시간 문제인 모양이다.

하� 바위가 무척이나 눈부시다.

그 바위 골로 쉬임 없이 흐르는 온천수.

생각처럼 따겁지는 않았다.

저 라오디게아에로 가기 전에 벌써 뜨뜨미지근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너무나 오래 흘러 나려서일까?

모두들 발을 담근채 앉아서 히히낙낙이다.

남자들의 히히낙낙과 여자들의 히히낙낙의 그 저의는 조금은 달랐으리라

왜일까?   ㅋㅋㅋㅋㅋ(공개 할 수가 없는 사진들이 몇장 있지! ㅎㅎㅎ)

한참을 족욕을 한 후에 모여모여 사진을 찍고, 발을 딱고 또 따라 나서란다.

그 옛날, 크레오파트라가 알몸으로 목욕하며 안토니오와 즐겼던 그 온천장으로 가 보쟌다.

조금 큰 연못만큼 바위로 둘러 싸인 온천장을 둘러 싼 돌들에도 아름다운 조각들이 새겨저 있었다. 많이 부서지기는 했어도….

그 안에서 제마끔 크레오 파트라처럼 자태를 뽑내는 많은 여자들과, 또 저마끔 근육을 자랑하고픈 안토니오들이 꽤나 많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거저 손바닥만한 헝겁으로 온 몸을 가린 그네들을, 옷을 다 입은 채 쳐다 보기가 좀 민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우린 다행히 Sun Glass를 끼고 있었으니까….

 

성 빌립교회가 저~~ 언덕위에 있는데 좀 힘이 드는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 그늘에서 기다리고 올라갈 사람들만 따라 나서란다.

할수 없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나이가 다르고 체력의 한계가 다르니 어쩌리요.

복원 된 야외극장 터로 올라가는 중에 뒤 따르는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를 확인하려 뒤돌아보며 앞으로 가시던 목사님이 갑작이 쓰러 지셨다.

그 촌각의 시간에 그래도 몸을 추스리는 그 동작이 역시 특수요원다웠다.

얼굴에는 영광의 훈장을 하나 달으시고…..

적쟎은 높이의 Curb에서 그만 떨어지신 것이다.

그래도 그만 하시기에 다행이었고, 또 목사님이시기에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목사님이시니까 하나님의 가호가 좀 더 찐하지 않겠는가…!

만약에 목사님이 아니라 우리 일행중의 한 노인네가, 그 것도 특수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할아버지나, 혹은  골다공증이 시작되는 나이에 들어 선 할머니가 낙상하여 팔이라도 부러 졌으면 어쩔뻔 하였는가 말이다.(목사님에게는 무지 미안한 소리이지만….ㅎㅎㅎ)

후일담이지만 사모님이 목사님 허리를 마사지 하노라 근육통에 꽤나 시달리셨다나…..?

앞을 보도록 앞에 달린 눈으로, 뒤를 보며 몸은 앞으로 나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아픈 경험이었다.

마찬가지로 천성을 향하여 걸어 나가는 우리가 세상사 뒤를 돌아다 보며 걷노라면 또 이렇게 실족하지 않겠는가……

거저 앞을 봐야만 할 테인데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삶이니……

언제나 벗어나려는지……

 

언덕바지에 지어 진 야외극장은 규모면에서는  에베소보다 작았지만 제법 복원이 잘 되어 있었다.

그 곳을 나와 또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제법 만만챦은 야산의 언덕길이다.

헉헉 거리면서 올라간 곳에 있는 성 빌립교회의 폐허……

가는 곳마다 폐허이기에 이제즈음에는 폐허에 꽤나 익숙해져 있어야 할 테인데 아직도 폐허를 보는 마음이 찌잉하는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를 피해 이 곳에 온 사도 빌립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교회를 세웠단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던 중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옥사했다고 한다.

그는 죽음에 앞서 자신의 시신을 예수님처럼 세마포로 싸지 말고 파피루스로 싸라고 유언했다는데 주님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겸손함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 8각형으로 되어 있는 이 기념교회는 비쟌틴 시대에 이 도시가 주교가 있는 교회로 발전이 되었을 때 사도 빌립을 위하여 그의 무덤이 있는 곳에 큰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란다.

오랜 풍우에, 지진에 다 부서지고 몇개 안 남은 돌기둥과 돌문틀 뿐이었지만 그 문틀마다에 다윗의 별이 조각되어 있었고 십자가의 모양이 조각 되어 있어 우리를 반기며 그 문을 지나게 하여 주었다.

큰 원을 그리는 그 문들을 지나면서 이는 상념, 과연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도 빌립이 전도한 지역은 사도 바울이 전도한 지역과 구별이 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면서 로마를 통해 스페인에까지  가기를 경영하였지, 아시아 남쪽에는 가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지 아니하려는 것은 이미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였다.               

로마서 15:20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것이 빌립 사도가 전도한 바로 이곳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들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과 함께 2차 여행 때까지 성령이 막아서 소아시아로 갈 수가 없었다는 구절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일까?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상관이 있던 없던,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지 모든 일들은 만유의 주재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 졌을 터이니, 부족한 우리 머리로 하는 공상이 무슨 소득이 있으리요……

 

부서져 문 틀만 남은 그 문들을 통해 한바퀴 돈 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바지에 서니, 멀리 하얀 목화의 성이 보이고 그 위에서 오밀조밀 움직이는 사람들이 점점점이다.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리로 내려가야지.

 

호텔로 돌아 오니 모두들 파김치가 된것 같다.

오늘도 얼마를 걸었던가…..

이럴 때에는 온천이 최고지.

아마도 그래서 요번 일정 중에 이곳에서 두밤을 잘 수 있게 짜여진 모양이다.

뜨거운 온천 물에 몸을 푸욱 담그며 나오는 탄성!

~~~! 시원하다!

믿을 X(사람) 한 사람도 없다는 유머가 생각나 혼자 씨익 웃었다.

 

 

 

사족

히에라 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 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최대 1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