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알람브라 5 알카사바
"붉은 성"이라는 뜻의 요새 알카사바(Alcazaba).
이슬람들이 장악하였던 이베리아반도에서 레콩키스타 (그리스도교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스페인 전역의 영역을 잃어가다가 마지막 남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를 한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운 붉은 요새다.
그러나 결국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의 부부 왕에 의하여 1492년 그 운명을 다한 채 지금은 스페인 사람들이 당시의 승리를 기념한 종이 그 종탑에 걸려 있게 되었다.
이 종이 울리면서부터 이베리아반도에 남겨진 아랍인의 유물과 문화는 기독교 문화로 덧칠하여지게 된다.
현재의 스페인 지역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이 711년 이슬람 옴미아드왕조의 침입을 받아 붕괴된 후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까지도 노렸으나 732년의 "투르 푸아티에" 싸움에서 패배한 이후 이베리아반도로 물러나 정착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8세기 동안 피레네산맥 북쪽의 서유럽을 능가하였던 이슬람의 문화와 과학기술은 이베리아반도의 문화와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였다.
이미 10세기에 코르도바 도서관은 60만 권의 서적을 소장하며 그리스철학을 연구하고 있었고, 11세기에 종이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톨레도에서는 아라비아에서 시작한 연금술의 발전으로 질 좋은 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권력과 문명에는 흥망성쇠가 있음"을 기록하여 주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그 자취를 보며 그때를 회상할 수밖에….
알카사바는 지정학적으로도 높은 언덕위에 세워진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채였으나 이슬람세력이 약해져 그 명운을 다 한 것을 알게 된 마지막 왕, 나스르 왕조의 보아브딜은 이 성에서 수성하며 항전하기 보다는 이 아름다운 궁전을 파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궁전 아래 계곡 건너편의 작은 산인 사크로몬테 지역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며 격렬하게 저항하다 결국은 항복을 하게 되었으니 기실 이 알카사바는 아름다운 궁전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성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지는 못한 셈이 되나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마지막 싸움터였던 그라나다!
그 싸움에 패한 이슬람이 떠난 후, 잠시 스페인의 왕궁으로 쓰이다가 방치되면서 폐허가 되어가는 오랜 세월동안, 집시들이 모여 살며 퍼트리는 무어 왕들의 이야기와 신비스러운 건축들이 어우러져 있으니 신화와 전설이 가득할 수밖에....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폐허가 된 궁전에 머물며 이야기들을 모아 '알람브라 이야기'를 집필했다.
1832년 그의 소설이 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며 알람브라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에스파냐 정부에서 궁전을 복원했고, 덕분에 그라나다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인 알람브라궁전을 우리 같은 여행객이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성터는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을까?
아직도 그 싸움은 중동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번영했던 이슬람 도시 그라나다.
무슬림 왕조의 지배는 1492년 기독교 세력에 함락되면서 과거가 됐지만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현재도 유럽에 세워진 아랍 최고의 유적으로 칭송받고 있다.
성벽은 돌로 만든 석성이 아니고 이 지방에서 나는 붉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은 일종의 토성이다.
붉은 진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성루
그라나다 시를 향해 진열된 옛날 대포,
성 안 병영터
그 당시의 화장실 모습이다. 신기하게도 옆에 물이 흐른 흔적이 없다. 꼭 있어야 되는데….
스페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종탑.
누구를 위하여 저 종은 울렸을까?
구글에서 본 알람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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